생전의 죄를 씻어 천국에 오르는 여정
아래에서 시작할 때 가장 힘들고
위로 오를수록 더 쉬워진단다.
그러니 오르는 일이 한결 가벼워져서
배가 강을 따라 떠내려가듯
기분이 좋게 느껴질 때면
넌 곧 길의 끝에 도달할 것이니
거기서 마침내 휴식을 기대할 수 있을 게다.
41p. 4곡 89~95
지옥이 용서할 수 없는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라면, 연옥은 용서받을 수 있는 죄를 씻어냄으로써 천국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죄를 씻는 연옥에서도 벌을 받는데 개인적으로 이 벌 역시도 가혹하다. 눈꺼풀을 철사로 꿰매는 층도 있고, 말라비틀어질 정도의 기근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지옥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속죄의 가능성과 천국으로의 진입의 허용이다. 연옥에 있는다고 모두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천국으로 프리패스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상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면 된다. 어이없기도 하지만, 이 세계관이라면 납득이 간다.
연옥은 총 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과 마찬가지로 각 층은 일곱 가지의 대죄를 묻고 있다.
연옥 1층 : 교만의 죄
연옥 2층 : 질투의 죄
연옥 3층 : 분노의 죄
연옥 4층 : 나태의 죄
연옥 5층 : 탐욕의 죄
연옥 6층 : 탐식의 죄
연옥 7층 : 색욕의 죄
각 층마다 역시 그 죄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있고, 단테와 이야기를 나눠서 그 인물의 사연을 약간 조명해주고 단테가 그에 대한 안타까움 내지 통쾌함을 느끼는 구성으로 지옥편과 동일하다. 하지만, 나는 지옥편의 가독성을 얘기할 때 단테의 성찰 및 고뇌가 적어서 수월하게 읽어나갔을 거라고 예측한 바가 있는데 역시나 정답이었던 듯하다. 연옥편은 지옥편과 비교해봤을 때, 단테의 고뇌와 성찰이 많은 편이다. 때문에 수월하게 읽어나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로 연옥편에는 삽화가 많이 없다. 지옥편은 엄청 많았는데. 또한 지옥에는 약간이지만 내가 아는 인물이 있었는데, 연옥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 점 역시 내가 이 책의 가독성을 느끼는 데 있어서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관에서 다소 공감할 수 없고 강압적인 것 같은 부분이 한 가지 있다. 의문 자체가 이 작품을 대함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나는 의문이 들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이 의문은 바로 기원전 사람들에 대한 세계관의 태도다. 예수가 탄생하기 전이었으니 당연히 세례도 받지 못했을 것이고, 심지어 믿는 것조차 하지 못했을 그들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게 나는 참 불합리하게 여겨진다. 지옥 1단계에 있던 소크라테스나 히포크라테스 등등의 인물을 보면, 이유가 기원전 사람이기 때문에 신을 믿지 않아서(?)다. 단테를 이끄는 지도자 베르길리우스 역시 지옥에서 연옥까지 단테를 전부 순례시켜준 뒤 천국의 문턱 앞에서 유유히 사라진다. 이유는 바로 그가 기원전 사람이라 세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절대적인 이 세계관에서 내 의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조금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어야겠다. <신곡>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이 <변신 이야기>가 도움이 되겠지만, 마찬가지로 <변신 이야기>를 이해함에 있어서 <신곡>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신곡>에서는 <변신 이야기> 속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그 비중은 크지 않았기에 그 자그마한 조각들을 세세하게 다루는 <변신 이야기>가 <신곡>을 읽은 다음에 읽을 책으로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신곡 : 천국편>은 정보에 의하면 빛밖에 없다고 하던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