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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May 11. 2024

[서평] 나의 죽음은 남겨진 자들의 것

이창익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죽음은 확실하지만 죽음의 시간은 불확실하다.



 단언컨대 국내 작가가 쓴 죽음을 주제로 한 철학책 중 가장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도 볼 수 있듯, 죽음은 대게 시간과 연관 지어 파고들어지며, 그 시간성을 통해 되려 존재 자체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한다. 저자 역시 시간성을 인간 고유의 본질적 요소로 죽음과 연관 짓는다. 깊은 통찰을 지녔다고 극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나는 '나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는 당연하지만 어색한 이 사실을 감각적이고 직관적이게 설명하고, 나는 경험할 수 없는 '나의 죽음' 이후를 도모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장킬레비치의 책을 읽고 나는 죽음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마쳤다. 죽음은 나를 철저히 무화시켜 없애버리지만, 되려 그 필멸의 죽음은 내 존재의 '있었음'을 명징하게 남기는 하나의 현상이다. 죽지 않는 불멸의 인간에게 '있었음'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 존재 자체가 오롯이 타인에게 전가될 가능성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내면에서 죽음을 찾아 헤매지 않고, 시선을 밖으로 돌려 나만의 죽음을 정의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내 정의를 더 섬세하고 단단하게 다져주는 데 상당한 고찰들을 보여준다. 나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나의 죽음'과, 내가 경험할 '너의 죽음', 네가 경험할 '나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 그리고 죽음 같지 않은 '그들의 죽음'. 주체를 중심으로 죽음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것은 꽤 의미 있고, 심오한 일이다. 나의 죽음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 죽음의 경험은 오로지 타자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죽음이라는 것에 탐구심을 갖게 된 계기가 아버지(타자)의 죽음이다. 타자의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나의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말이 정확히 맞다. 나는 '너의 죽음'을 경험하며 '나의 죽음'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죽음'이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너의 죽음'이 나에게 미칠 영향을 상상해 본다. '나의 죽음'은 네가 경험할 수 없지만 마침내 마주할 '너의 죽음'의 이미지에 강한 영향을 줄 것임이 분명하다. 좋은 죽음 같은 것은 없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정의하는 죽음이 더 이상 무섭지 않도록 아름다운 죽음을 그들에게 경험하게 할 의무가 있다. 결국 '나의 죽음'은 '아름다울 나의 죽음'과 죽음을 향해 살아간 나의 일생이 '있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맡겨지는 것이다.



 결국 내 일생의 의미는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서 정의될 것이다. 그 순간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마도 죽음을 뛰어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죽은 이후의 그들에게 남겨진 나를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내 끝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이거 하나는 분명해졌다. '나의 죽음'은 남겨진 자들의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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