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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Sep 09. 2024

[서평] 난 자살할 자유가 있음에도 살 것을 선택했다.

게리 콕스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실존주의자는 자신이 무언가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을 때 기꺼이 그렇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실존주이자는 불확실성과 냉엄한 진실을 모두 삼켜 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실존주의에 대해서도 그리 명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내 생을 더 가치 있고 찬란하게 가꾸는 데 영향을 주는 니체와 하이데거가 그 실존주의에 꽤 권위자라는 사실만이 나와 실존주의의 연결 고리 정도다.



 실존주의는 강건하게 말한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은 존재이며, 이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조건 없이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과 같다. 나는 실존주의를 접했고, 실존주의자가 될지 말지 선택할 자유 앞에 놓였고, 나는 실존주의자가 되기로 선택했다. 나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유와 선택에 따른 책임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실존주의자를 선택함으로써 이 현실의 냉혹함과 잔혹함, 불합리와 불공정을 있는 힘껏 껴안고, 결코 쉽지 않을 인생을 긍정해야만 한다는 책임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 부조리의 만상이 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실존주의는 결국 삶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한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내 생과 인간으로 존엄에 대한 것이다. 실존주의자는 늘 환상적이어야 할 미래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엇임을 인식하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존재다.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무거운 돌을 정상으로 끊임없이 올려야 하는 시지프와도 같다. 그런 예견된 불합리 앞에 과연 좌절해야만 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그렇게 내 존재에 의미를 띤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도달하고자 하는 숙명을 들쳐멘다.



 냉혹한 세계를 한 치의 감정 없이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내 삶에 대한 존엄을 잃지 않고 내 존재를 밝혀나가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실존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엄연히 당면한 현실과 다가올 명백한 사실들을 외면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실존주의자는 결코 자기기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



 실존주의자는 허무주의의 경계를 넘나든다. 삶의 불합리와 부조리, 두려운 것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앎과 동시에, 그럼에도 삶이 의미 있다고 노래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자는 스스로 선택해서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결과적으로 부조리의 만상인 삶이 승리하겠지만, 실존주의자는 그 삶을 살아가는 극복의 여정에 더 큰 의미를 두겠다고 선택한다.



 당장이라도 자살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음에도, 이 생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것 역시 나의 자유에 따른 선택이다. 그 선택 자체만으로 이 삶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이 삶을 끝장내 없애버리기보다는 계속 살아가기로 선택하면서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전부 스스로 지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절대 이 삶을 멈출 수 없다. 나는 죽지 않기로 기꺼이 선택한 실존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자는 때로는 정이 없어 보인다고, 로봇 같아 보인다고 듣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기기만에 기반한 타자의 평가임이 불과하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고, 언젠가는 헤어지게 돼 있다고, 모두가 아는 그 진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실존주의자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그 냉혹한 현실을 꺼려하는 것이 바로 자기기만임은 분명하다. 그런 자기기만에 기반한 삶에 진정성이 존재할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실존주의자는 절대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허무주의의 울타리에 실존주의는 결코 담길 수 없다. 허무주의와 반허무주의를 모두 아우를 수 있고, 그것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게 바로 실존주의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부여하기로 한 의미만 지니게 돼 있다. 삶은 오로지 우리가 사는 것이고, 우리가 그 의미를 지니게끔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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