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충수 『실존의 향기』
삶에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선택들과 그에 따른 책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 역시 대다수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이미 정해진 결정에 따라서 편안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그들의 삶에는 자기 자신이 빠져 있습니다.
45p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실존주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실존의 분위기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실존주의 입문서이자 안내서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어느 정도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 향기를 물씬 맡으며 즐길 수 있었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철학자들인 사르트르, 하이데거, 니체, 야스퍼스, 키르케고르 등 그들의 책 속 문구를 풀이해 주는 형식으로 독자에게 함의를 전달하는 데 매우 노력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강의를 묶어 놓은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하기도 하다. 이런 형식 덕분에 대학교의 실존주의 철학 교양 수업을 듣는 행복한 몰입까지 가능해진다.
나는 꽤 많은 철학서적들을 읽어오며 많은 ~~주의를 접해왔는데, 각각의 철학이 심오하고 난해함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을 때 공부를 하며 느끼는 답답함이 철학 탐구 속에 존재할 틈이 없는 이유는 철학은 정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와 그 윤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이외에 누가 정해놓은 정답도 없으며, 그렇기에 오답도 없는 이 끝이 없을지 모르는 미지의 토대 위에서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모호함이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가능케한다. 내가 정답이라고 느끼면 그 순간의 나에겐 그게 정답인 것이다. 지금 실존주의가 내가 생각하는 삶의 태도에 부합하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더 이상적인 내 모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그때부터 나는 실존주의를 내 삶의 한 정답으로 채택하는 것이다. 나의 이런 방향 아래에서 더 나은 철학을 내가 발견한다면 언제든 나는 그 철학에 투신할 것이다. 그게 진정 철학을 대하고 사랑하는 자의 태도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난 철학 연구자도 아닐뿐더러, 그런 철새 같은 방식 역시 내 자유 아래 선택의 결과다. 책임 역시 내가 지는 것이니, 내 삶의 태도에 대한 나의 선택에 타인의 판단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웃기게도 나의 이런 태도 자체가 실존주의 그 자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나는 실존주의를 접하고 그 태도를 내 삶에 적용시킨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태도가 알고 보니 실존주의의 방식과 매우 유사함을 독서를 통해 발견한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실존주의자임이 분명해졌다.
이런 자기 인식 아래에서 실존주의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건, 내 삶의 태도를 더 견고하게 만들고, 그 윤리를 더 확고히 한다는 점에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그 무엇보다 유익한 일임이 분명하다. 내가 이 세계 위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 세계에 대한 탐구를 멈추는 건 비본래적 삶을 살겠다는 선택과도 같다. 실존주의자라면 이 상황에서 탐구를 계속해나가 본래적 삶을 향해 가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탐구의 여정 속에 이 『실존의 향기』는 꽤 반가운 책으로 남을 것이다. 실존주의를 최대한 잘 이해시키고 설명해 주려는 십수 년을 연구한 인자한 교수님의 수업을 값싼 책값 하나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실존주의를 향한 여정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삶의 여정 중 지금 걷고 있는 이 구간이 '실존주의 탐구' 구간으로 불릴 수 있으며, '실존주의'라는 정류장을 향해 나는 가고 있음은 분명해졌다. 다음 정류장이 어디일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내 무수한 선택의 결괏값들이 그 정류장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임만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