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르 봉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국가의 정치적 결정에서 하등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군중이 이제는 점점 지배 계급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정치 제도 때문이 아니라, 군중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사상 때문이다. 지적 수준은 열등하나 행동력은 뛰어난 군중은 사상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세력을 형성했고, 그들의 힘은 군주의 권력을 넘어섰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국회의원들 개별 프로필을 보면 참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저리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나 이외에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꽤 많지 않을까 싶다. 사회에서 셔츠 깃 좀 세우셨을 분들이 도대체 왜 국회의원만 되면 바보 멍청이가 되는지 말이다.
이 책 『군중심리』를 읽으면 그런 정치인들의 행위가 다소간 납득이 간다. 왜냐하면, 저자에 따르면 군중은 비이성적이고 판단력이 떨어져 과격하고 감성적인 언어를 이용해 선동해야 한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당리당략을 위해 군중을 선동해야만 하는 정치인들은 그 군중에 알맞은 방법으로 정치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 개인은 익명에 숨어 군중이 되는 순간 판단력이 흐려져 과격하고 비이성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며, 선동가가 지휘하는 방향에 따라 무작정 추종한다. 그렇게 지도자이자 선동가는 거의 종교적 권위를 갖게 되며 마치 교주처럼 취급을 받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어느 정도 결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는데, 마키아벨리는 백성은 무지하고 무식해서 강력한 통치 권력 아래에서 가혹하게 다뤄야 한다고 일갈하고, 귀스타브 르 봉 역시 군중을 문명과 인류의 진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일갈한다.
SNS가 발달하고, 다양성보다는 편향성에 더 매몰될 수밖에 없게 하는 알고리즘 때문에 군중은 더욱이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한 쪽을 지지하는 자들은 한 쪽에 유리하게 보도하거나, 유리한 논지의 주장만을 받아들이지 반대는 일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심지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군중은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퇴치해야 할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군중으로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군중도 큰 잘못이 있지만, 나는 정치인에 더 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들의 당선을 위해, 당리당략을 위해, 엄청난 특권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에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들에 환멸이 느껴진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서로 손가락질이나 해대고 있다. 미국은 로켓을 재사용하고, 일부 주에서는 완전 자율 주행을 실행한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이런 세계 기술의 급성장은 안중에도 없다. 그냥 본인들 혹은 본인 세력의 이익만 보고 어떻게든 국회의원 한 번 더 하겠다고, 장관 자리 한 번 해보겠다고 지지 세력에게만 아양을 떨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고 플라톤이 그랬던가. 일부 동의하지만, 국민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다. 그것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군가 독불장군처럼 나서서 강제로 끌고 가도 모자랄 판국이다.
군중이 자신의 무지몽매함을 깨달을 가능성은 0%에 가깝고, 정치인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일할 가능성은 그거보다 더 0%에 가깝다. 군중은 선동가를 만들고, 그 선동가는 더한 군중을 만든다. 대한민국이 이 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안타깝게도 많이 낮아 보인다.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안겨줄 의무가 그들에게 있음에도, 평균 연령 56.3세인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사탕 발린 말로 미래를 위한다며 계속해서 폭탄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고 있다. 군중심리는 나쁘게 이용할 수도 있고, 여태까지 나쁘게 이용되어 오고 있지만, 좋게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세계의 흐름을 잘 읽는 훌륭한 지도자나 선동가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뽑을 사람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 좌우 상관없이 대한민국을 두 쪽 내고 있는 무책임하고 욕심 많은 정치 세력들을 보며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져 자기만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단순히 누군가의 선동에 이끌려 찬동하는 것이 아닌, 자기만의 논리가 있는 주장을 갖게 되길 바란다. 그런 사람들이 군중이 된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