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 내가 책을 쓴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이호찬 『해체와 재건』

by 책 읽는 호랭이



필자에게는 독자들의 세계를 파괴할 정당성이 없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은 존재인 만큼 모든 것은 전적으로 '자기'에게 달려 있다. 이 책을 읽을지 말지는 독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기투를 필자가 마음대로 어떻게 해 볼 권리도, 정당성도 없다.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의 방향성을 던져 주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책이 본래적 실존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자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광화문 교보문고 일반 철학 코너 제일 아랫단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실존주의자로서, '실존을 위한 일상적 관념의 재구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집어 들고 책 곳곳을 훑어보니 이런 느낌이 강하게 왔다. '아, 내가 책을 쓴다면 이 저자와 같은 의도로 이런 형식을 책을 쓰려고 하지 않을까?' 책을 구매하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에 이런 감정을 주는 책은 처음이었다.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저자는 일상적 개념들을 분석함으로써 '해체'하고, 의미를 다시 쌓아 올리며 '재건'한다. 주제가 되는 개념들은 각 장으로 나뉘어 14장 정도로 구성된다. '대화와 설득'. '철학', '관계', '이름', '죽음' 등이 그 개념들이다. 실로 우리가 내뱉는 보편적 일상 언어들의 개념을 분석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에게 큰 화두가 된 '죽음' 역시 그러한 과정이었다. 죽음을 다루는 수십 권의 소설, 철학을 읽으며 난 죽음을 해체하고 재건해 왔다.


저자의 책 저술 과정이 쉬워 보이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왠지 나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가 생긴다. 능력에 대한 것보다는 욕구에 의한 것이 더 큰 것 같다. 실존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일상적 개념을 해체하고 재건하는 것은 나 역시도 저자만큼은 아니겠지만 꽤 잘하기도 하고 말이다.


철학 서적이 꽤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책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자는 이 실존의 향기가 무릇 아직 실존주의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퍼지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구성했다고 확신한다. 아마 저자의 철학적 깊이는 훨씬 깊을 것이다. 깊게 쓸 줄 아는 사람이 효과적인 얕은 글도 쓸 줄 아는 것이다.


이 저자를 만나보고 싶다. 어떻게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가게 됐는지, 수많은 철학 중 왜 실존주의를 택했는지, 어떻게 실존주의를 접하게 됐는지 실존적인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이 친근감은 뭐랄까,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삶의 중요한 무언가를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이 느낌.


높은 확률로 이 사람은 나랑 많은 공통점이 있을 것 같다. 각자 다른 세상을 살아왔고, 살고 있을 거지만, 놀라우리만치 똑같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것은 바로 삶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우리가 이 삶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이 부조리한 세계를 어떻게 인정하고 반항해가야 하는지, 마침내 죽어 없어지고 마는 존재의 필멸성 앞에 현존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마 저자는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을 것만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평] 군중의 비이성과 정치인의 무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