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파괴하는 허상과 사랑
거짓말이 이제는 어떤 필요, 광적인 습관, 쾌락이 되어버렸다. 이리하여 끝내는 그녀가 어제 어떤 길의 오른쪽으로 지나왔다고 말하면 사실은 왼쪽으로 지나왔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392p
문학사에 꼭 거론되는 작품이자, 당시에는 크나큰 문제작이었다고 한다. 지금 읽어도 문제작이 아니라곤 말 못 하겠다. 한 유부녀의 엄청난 일탈을 다룬 것이다 보니 자극적이고 불쾌할 수밖에 없다. 불륜을 다룬 작품들은 이제는 현대인들에게 꽤 진부한 것들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이 불륜에 적응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불륜을 통해 전개할 수 있는 스토리가 지극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마담 보바리> 역시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는 전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륜을 사용한 전형적이고 정석적인 스토리 전개로 보인다. 그런 진부함의 위협 속에서도 이 책이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불륜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과 불륜 상태에 있는 엠마 보바리의 심리 상태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결혼에 엄청난 환상과 허상을 갖고 있던 여인이, 시골 의사인 샤를르 보바리를 만나 결혼하고, 그가 몰취미하고 따분한 남자임을 깨닫자마자 새로운 사랑을 갈구, 횟수로는 총 3번의 외도를 하게 된다. 그 외도의 동기와 과정 속에도 엠마 보바리의 환상과 허상이 잔뜩 녹아 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엠마 보바리에 더 빠져들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불륜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에서 엠마 보바리의 일말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먼 길을 떠나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새로운 사랑이 없으면 버틸 수 없었고, 상상과 환상 없이는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인간이 돼버린 것이다.
단지 불륜이라는 잘못된 사랑의 형태에 국한돼서 엠마 보바리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래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그녀의 최후가 결국은 돈 때문이기 때문이다. 불륜으로 인한 파산이긴 하지만, 그녀는 사랑에 죄책감을 느껴 목숨을 끊지 않는다. 재판에 넘겨져야 하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방법이 없어 목숨을 끊게 된다. 외도로 인한 심판으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랑의 형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상상과 허상, 환상이 만들어낼 수 있는 괴물의 한 형태를 제시했다고 본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불륜을 한 여인의 남편인 샤를르 보바리의 '외도를 한 아내를 받아들이는 자세'다. 샤를르가 부인의 외도를 그녀가 죽은 후에 알게 됐다고는 하지만 그의 반응은 어떻게 보면 납득하지 못할 것이기도 하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샤를르는 외도를 한 남자들을 모두 알고, 그들이 나름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황과 고통을 운명에 모두 전가함으로써 체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거대하고 잔인한 운명 앞에 샤를르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가 더 미련해 보이고 로맨틱해 보이는 이유는 죽음의 이유를 제공한 것이 자신의 부인임에도 그녀의 머리카락 한 줌을 손에 쥔 채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보바리 가족이 파탄 난 것인지, 돈 때문에 보바리 가족이 파탄 난 것인지 나는 아직도 판단이 잘 안 선다. 그 사랑이 없었다면 과연 파산이 없었을까?라고 질문을 해도 원래 사치를 좋아하고 허상이 있던 엠마 보바리였고, 주위에 기회를 노려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기에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돈 문제가 없었다면 이 가정이 파탄 나지 않았을까?라고 질문해도 역시 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다.
사랑과 돈이 아닌 그들을 파괴로 이끈 것은 엠마 보바리의 '보바리즘', 즉 환상을 좇아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를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것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