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들 (1). 죽음 [에세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을 나의 흔적

by 책 읽는 호랭이

죽음을 흔적으로 이해하게 된 이후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아니, 명확해졌다고 표현하는 게 적확하다.


나는 여전히 평범한 하루를 살지만,
그 하루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감각
어딘가에 늘 남아 있다.


나의 평범한 하루들은
나만의 고유한 역사가 되어
내 존재의 형식들을 쌓고 있다.


말 한마디를 건네고
순간의 선택을 하고
누군가와 시간을 나누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이미 나의 일부를 밖으로 보내고 있다.


그것들은 언젠가
내가 사라진 이후에도
타인의 기억 속에 작은 형식으로 남을 것이다.


이 사실은 삶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고
무겁게 다가오지만,
오히려 삶을 선명하게 만든다.


나는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남겨질 나의 형식을
준비하는 존재라는 생각.


과거가 된 현재들,
오롯이 순간인 현재들,
다가올 순간인 미래들,
그것이 나의 남겨질 형식이다.


그래서 삶은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축적하는 과정이 된다.

또한, 흔적을 설계하는 과정이 된다.


나는 완벽한 흔적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기억 또한 쉽게 변형된다.


나의 흔적은 결국
나의 의식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타자에게 맡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낸 방식이,
흔적이 되어 다가갈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세계에서 작은 좌표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에게 죽음은 더 이상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죽음을 이해 가능한 지평 안에 두게 되었고,
그 이해는 삶을 회피가 아니라
의미의 축적 과정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지금의 삶을 더 또렷하게 비추는 배경이 된다.


나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남을 것은
결국 내가 살아낸 형식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미 흔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겨질 나의 흔적을 떠올리면서.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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