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말미암아 산다는 것
자유라는 말은 흔히 억압에서 벗어난 상태를 뜻하는 말로 이해된다.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상태, 간섭받지 않는 상태.
우리는 자유를 대체로 해방의 언어로 배워 왔고, 쓰고 있다.
하지만 한자어로서 자유(自由)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결이 드러난다.
‘자(自)’는 스스로를,
‘유(由)’는 까닭, 말미암다, 비롯된다는 뜻을 가진다.
자유는 단순히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로부터 비롯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외부의 속박이 풀린 결과로 해석하기보다는,
존재가 자기 자신을 기원으로 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보인다.
외부로부터 시작된 인식의 시점이
내부로부터의 시작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자유는 그야말로 나의 기원 그 자체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인접한 개념이 떠오른다.
자율(自律).
자율은 스스로의 규율을 뜻하는 것으로
행위와 그 행위 규칙을 말한다.
자율은 자유를 가진 존재가
그 자유를 삶 속에서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세우는 형식이다.
자유가 가능성이라면,
자율은 그 가능성을 살아내고, 뿜어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자율은 자유의 제한이 아니다.
자유로운 존재가 자유롭게 살기 위해
자유를 스스로 조직하는 하나의 결단이다.
우리는 흔히 자유를 선택의 순간에서 느낀다.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고르는 행위.
하지만 선택은 자유의 결과이지
자유 그 자체는 아니다.
자유는 선택 이전의 조건이다.
나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는 존재의 표면 위에서 발생하는 개별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표면 저 아래,
기원에 놓여 있는 구조다.
나는 외부의 힘에 의해 완전히 규정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말미암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그 자유가 삶 속 현실에서 나타날 때
자율이라는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자율은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유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결단이다.
끝없이 열려 있는 가능성 앞에서
나는 나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 아래에서 스스로를 살아낸다.
이 지점에서 자유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조를 가진 능력이 된다.
삶 속에서 자유는 거대한 선언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대부분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아주 작은 선택의 연속으로 경험된다.
말을 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떠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이 사소해 보이는 현실 속 순간들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기원으로 삼는다.
자유는 방임이 아니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상태는
자유가 아니라 유보다.
오히려 자유는
선택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다.
나는 나의 선택이
나의 형식을 만든다는 사실을 안다.
그 인식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은
우연한 반응이 아니라
자기 기원을 가진 행위가 된다.
그래서 자유로운 삶은
책임 없는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이 된다.
자유는 나에게 가능성을 열어 주지만
동시에 그 가능성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다.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자유는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묻는 긴장에 가깝다.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곧 자유의 실감이다.
나는 매 순간
나의 선택을 통해
나의 존재를 구성해 간다.
자유는 그렇게
삶의 가장 미세한 지점에서부터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출발점을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두는 태도다.
나는 세계 속에서 수많은 조건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조건들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지는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다.
이 응답의 가능성이
곧 자유의 실질이다.
다시 말해 자유란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 스스로의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세계에 단순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응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한다.
이 지점에서 자유는
추상적인 권리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힘이 된다.
자유는 특별한 순간에만 나타나는 사건이 아니라
매 순간 나를 통과하는 형식이다.
나는 그 형식 속에서
나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 선택의 책임까지 함께 살아낸다.
그래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자신을 기원으로 삼아
끊임없이 자신을 형성해 가는 일이다.
나는 외부의 흐름에 떠밀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준 아래에서
나의 삶을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유를 하나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의 태도로 받아들인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결국 주체로 산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말미암아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삶.
그것이 자유가
내 존재에 남기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