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들 (2). 자유 [에세이]

나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by 책 읽는 호랭이

나는 오랫동안 삶을 외부의 영향에 맡겨 두었다.
환경이 나를 만들고, 관계가 나를 규정하며, 상황이 나를 설명한다고 믿었다.
그 안에서 나는 반응하는 존재에 가까웠다.
주어진 조건에 맞춰 움직이고, 이미 짜인 흐름 위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


물론 우리는 조건 속에서 산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 피할 수 없는 역할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관계들.
그것들은 분명 나의 일부를 형성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공백 위에서 시작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다른 질문을 품게 되었다.


나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정말로 나는 외부에서 비롯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내 삶의 어딘가에는

타인의 손이 닿지 않는 출발점이 남아 있는가.


그 질문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더 이상 상황을 먼저 나열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기 전에
그 안에서 내가 어떤 태도로 서 있었는지를 묻는다.


나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삶의 기원을 어디에 둘 것인지는
완전히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자유는 아마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억압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내 삶의 출발을 나에게 돌려놓는 구조.
나는 선택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로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근거를 가진 존재가 된다.
설명되는 사람이 아니라,
설명을 시작하는 사람이 된다.


나는 상황이 나를 규정하게 두기보다
내가 나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택한 방향,
내가 감당한 태도,
내가 끝까지 붙든 기준이
나를 이루기를 바란다.


자유는 거창한 독립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말미암아 살겠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결심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조건이 나를 어떤 자리로 밀어 넣든,
내 삶의 시작만큼은 외부에 넘기지 않겠다는 태도.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어떤 날은 외부의 설명이 더 편하고,
상황을 이유로 나를 덜 책임지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이 질문을 놓지 않는 한
나는 완전히 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건은 나를 둘러싸지만,
그것이 나의 기원은 아니다.


나는 나로부터 시작하겠다.
완전해서가 아니라,
나를 기원으로 삼지 않으면
나는 끝없이 외부에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선택들이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쌓여 나를 만든다.


자유는 멀리 있는 상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삶의 출발점을 다시 붙드는 일이다.


나는 나를 말미암아 살기로 한다.
그 결단이 반복될 때
비로소 나라는 형식이 또렷해진다.

수, 일 연재
이전 04화존재의 형식들 (2).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