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 한 사람으로
우리는 일상에서 ‘인간’과 ‘사람’을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두 단어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놓인 결은 분명히 다르다.
‘사람’은 순우리말이다.
어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살다’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나는 이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는 존재’다.
숨 쉬고, 느끼고, 기뻐하고, 상처 입으며
하루를 통과하는 구체적인 생명.
사람은 언제나 한 얼굴을 가지고 있고,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서사가 부여된 존재다.
반면 ‘인간(人間)’은 한자어다.
‘인(人)’은 사람,
‘간(間)’은 사이, 틈, 여백을 뜻한다.
직역하면 인간은 ‘사람 사이’다.
왜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 굳이 ‘사이’가 들어갔을까.
‘間’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둘 사이의 거리이며,
관계가 형성되는 긴장이며,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 간극이다.
사이는 혼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최소한 둘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말은
애초에 단독 개체를 가리키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의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구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놓여 있는가’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사이’ 안에 놓인다.
부모와 자식 사이,
사회와 개인 사이,
나와 타자 사이,
나와 세계 사이.
나는 먼저 사람이기 전에
이미 어떤 관계망 안에 위치한 존재다.
인간은 사람이기 이전의 구조이며,
그 구조는 필연적으로 타자를 내정한다.
인간이라는 말 안에는
처음부터 ‘우리’가 들어 있다.
나는 언제나 나 이외의 누군가를 전제한 채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존재의 심리적 공간을 내재한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조로만 머물지 않는다.
살아가며 점차 하나의 사람이 된다.
이름을 얻고, 기억을 쌓고,
타자와 부딪히며, 선택을 하고,
하나의 삶의 결을 형성한다.
사람은 인간이라는 구조 안에서
구체화된 형식이다.
인간이 ‘사이’라면,
사람은 그 사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존재다.
삶은 인간이라는 구조 위에서
한 사람으로 빚어져 가는 과정이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며
마침내 한 사람이 되어 죽는다.
그 죽음은 나의 내부 경험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죽음을 끝까지 경험할 수 없다.
그것은 타자의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 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서만 완성된다.
나는 사라지지만,
‘사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구조이고,
사람은 생명이며,
한 사람은 타자 속에 남겨진 흔적이다.
우리는 인간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구체화되고,
마침내 타자에게 맡겨질 한 사람으로 완성된다.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우리는 언제나 ‘사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