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들 (3). 인간과 사람 [에세이]

나는 한 사람으로 남겠다

by 책 읽는 호랭이

나는 인간으로 잉태되었다.
그 순간 나의 삶의 터전은 결정되었다.
인간 세상에 내던져져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선고받은 것이다.


인간이라는 구조 위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숨을 쉬고, 말을 배우고, 관계를 맺고, 선택을 하며
하루하루를 통과했다.
기쁨과 실패, 확신과 후회가 그 위를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사람으로서의 서사를 쌓아가는 일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맡은 일을 끝내고, 책임을 감당하고,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삶.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내가 깨달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나는 분명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삶이 어디로 쌓이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하루는 하루로 끝났고, 선택은 그 순간의 필요 속에서 소모되었다.
나는 나의 생을 통과하고 있었지만,
나의 삶을 구축하고 있지는 않았다.


시간은 나를 앞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느 형식이 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살아가고 있었지만,
아직 쌓여가고 있지는 않았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흩어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는 설명할 수 있었지만,
어떤 사람으로 남아가고 있는지는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과
사람으로 쌓여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을.


인간은 이미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는 하나의 완성된 구조다.
그러나 사람은 그 구조 위에 쌓이는 형식이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시간은 아무 흔적 없이 흩어지고,
어떤 시간은 하나의 방향으로 남는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하고 중대한 일들 앞에서
나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결단하고 행동한다.


그 선택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지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층으로 남아
나를 하나의 방향으로 형성한다.


그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결을 만든다.


나는 나 자신을 떠올릴 때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그들을 대하던 방식,
그들과 머물렀던 시간의 태도,
함께 말없이 견디고 선택했던 순간들.


그것이 내가 쌓아가고 있는 형식이다.


나는 이제 나의 하루를 다르게 바라본다.
하루는 더 이상 소모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구축하는 시간이 되었다.
말 한마디, 잠시의 침묵,
머물기로 한 선택과 떠나지 않기로 한 결단.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설명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사람을 파고들어 재정의하면서
나는 비로소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내가 의미하는 사람으로 구축되는 길 위에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인간은 시작이다.
사람은 축적이다.


인간으로 주어진 삶이
선택과 관계, 그리고 시간 속에서
하나의 서사로 응축될 때
비로소 한 사람으로 남는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존재가 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구조 위에
나의 방향을 끝까지 쌓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인간으로 잉태되었다.
그리고 지금,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의 하루는 여전히 평범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이 평범한 시간들이
나를 하나의 형식으로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나의 삶이 응축되어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 사람의 흔적으로 남기를 바란다.


나는 인간으로 시작되었지만,
단지 인간으로만 끝나지 않겠다.
나는 한 사람으로 남겠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존재의 형식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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