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도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목표의 상실이 주는 참상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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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 모든 문제를 간수들이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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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죄 없이 끌려온 수용소 속에는 수많은 군상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기적인 사람, 아첨하며 이득을 보는 사람, 똑똑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등, 낯설지 않은 존재들이다. 심지어, 수용소를 관리하는 간부들조차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군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약간은 위험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과 우리가 비슷할 수 있는 점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점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지극히 지당한 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약간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다. 미래를 그리지 못한 채로, 목표가 없는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인간 자체의 삶의 이유를 상실한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사실 내 눈에는, 목표 없이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사람 =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목표를 강제적으로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형기를 채워 가족을 보러 간다거나, 그 이후의 행복한 생활을 목표로 삼아 수용소에서의 삶을 버텨나가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앎으로써 삶의 의욕을 '상실당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매일매일의 식사, 잠자리, 추위 등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목표 없는 삶'은 수용소 안의 사람들보다 더 비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목표 없는 삶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려는 마음은 추어도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목표를 부여할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꿈꾸는 그날을 위해 살아간다면, 삶의 의욕은 없어질 수가 없다. 사람에게 목표는 필수적인 존재임이 틀림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매일매일이 힘들고 고되지만, 누구는 책임감을 갖고 반을 이끌어가고, 누구는 담배를 나눠 피면서 행복을 나누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함께일 때의 존재가 혼자일 때의 존재보다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됐다. 그들이 독방에 가게 되는 영창을 극도로 꺼리게 된 것도,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힘들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수용소이기에, 함께라서 견뎌낼 수 있는 게 수용소이기에.



수용소 같은 곳에서 살지 않을 수 있는 시대에 내가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그때의 참담한 삶을 알 수 있게, 지금에 감사할 수 있게 처참한 수용소의 삶을 기록한 작가에게도 감사함이 느껴진다. 그들의 삶을 발판으로 삼아 나아가는 건 아니겠지만, 그들의 삶이 있기에 지금의 삶에 더 감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