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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매우 첨예하면서도 따뜻한, 금방 무너져버릴 것 같은 이야기들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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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린 소설집이다.


『그 여름』

『601, 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모든 소설집이 그렇듯, 이 책 역시도 같은 코드를 모든 작품에 자연스레 녹여냈다. 강압된 젠더성의 대물림, 성소수자 등등을 너무나도 섬세하고 유리 같이 투명하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이 묘사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묘사가 정말 좋았다는 점이다. 이런 문장들이 상당히 많다.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되게 감성적이면서, 섬세한, 유리알 같은 그런 묘사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묘사들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각 작품의 소재들을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런 묘사와 다소 불편하지만 불쾌하지는 않게 소재를 스토리로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을 보고 있자니, 왜 최은영 작가가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됐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난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봤다. 이게 단순히 자신에게 무해한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무해한 사람'도 순식간에 '내게 유해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작품에서도 나오듯, 영혼을 나눌 정도로 소중한 사람조차도 소수자임을 밝히는 순간 소중한 사람에서 혐오하는 사람으로 단숨에 뒤바뀐다. 곰곰이 생각하면 자신이 잘못된 걸 알지만, 커밍아웃의 순간 직관적으로 느끼는 불쾌감과 혐오감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고, 그 경멸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늘이 무너지는 것 이상의 고통으로 다가간다.



다른 작품들도 종국에는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어야 될 가족, 애인은 가부장제와 같은 전통적 관습 혹은 보편적 통념이라는 영역을 거치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내게 유해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튼튼한 콘크리트와도 같지만, 동시에 건들면 쉽게 부서져버리는 쿠크다스와도 같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나에게 참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관계가 단 하나의 무엇 때문에 한순간에 와해될 수 있고, 무엇보다 견고하다고 여기고 있는 관계들이 사실은 유리보다 약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불변의 진리일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쩐지 인정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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