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인 디스토피아에 촘촘히 짜인 사랑
마거릿 애트우드는 현대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작가다. 여러 가지로 굉장히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난 『그레이스』로 이 작가를 알고 있었고, 그 책의 표지가 정말 이뻤다는 점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 정도도 알고 있었다. 『시녀 이야기』도 빼놓을 순 없구나!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원초적 감정을 끊임없이 끌어냄으로써 다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의아함을 선사하고는 한다. 진짜 급박한 상황에 갑자기 성관계 생각을 한다던가, 절대 그러면 안 되고 그러지도 못할 상황에서도 성관계를 떠올린다던가. 이러한 면은 지극히 의도한 것처럼 남편인 스탠, 아내인 샤메인이 지속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지만, 저게 인간임을 부정하지는 못하는, 참 애매하고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그런 인간의 치부가 아닐까 싶다.
애트우드가 작품에 투영한 새로운 사회에서는 섹스 로봇 또한 중요 화두로 등장한다. 최근 리얼돌이 국내에서 화제가 됐는데, 여러 주장들이 아직도 생각나고, 책에도 그대로 나온다. 리얼돌을 통해서 성적 욕구를 해결해 성범죄율이 낮아질 거라는 찬성 주장과, 리얼돌을 통해 성범죄 예행연습을 할 거고, 단지 이성을 성적 도구로만 바라보게 됨으로써 존엄성을 해칠 거라는 반대 주장. 국내에서도 꽤나 첨예하게 갈등이 있었는데,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예측에 불과하고,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예측에 불과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리얼돌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 듯하나, 격정적인 반대의 입장도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을 견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면, 분명히 나만의 주장을 세워 관철해야겠다.
또 하나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소재, 뇌신경 개조다. 사람의 뇌 일부분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그 사람에게 특정 행위 혹은 감정에 대해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은 누구나 생각해볼 법한 사안이다. 수술 후 눈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작품 속 등장한 뇌신경 개조의 예시다. 당연히, 인간 본연의 자율성을 철저히 짓밟는 행위임은 틀림없지만 분명한 건 장점도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종국에 작가는 암시, 즉 마음의 상태가 뇌의 화학 작용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하는 바이다. 최근 들어, 마음의 상태가 직접적인 신체에 더불어 보이지 않는 미래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미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그 이후로 내 모든 삶에서 나의 최우선 순위는 내 마음이 편한 상태, 즉 행복한 상태가 됐다. 스트레스 없는 상태만큼 내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잘 짜인 애트우드의 세계에서 놀다 온 느낌이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각각의 관계와, 이해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그런 인간의 적나라한 면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재밌는 이야기 한 편이 탄생한 것 같다. 앞으로도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은 종종 찾아서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