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녕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일까?
나는 늘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왔다. 내가 스스로의 상태를 지각할 수 있을 때부터는 명확히 그렇다. 가족, 여자친구, 친구. 나에게 ‘소중한’이라는 형용사는 꽤나 의미가 깊고, 나에게 크나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에게만 (감히) 부여한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막대하고 절대적인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그런 존재일 때, 이들이 바로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엄청난 행운인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 완벽한 황금률을 이루는 이 관계는 어떻게 보면 나에게 억만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느끼기에, 나는 그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어 무던한 노력을 한다. 끝없는 표현과 자기계발, 공감 등이 그렇다. 사실, 한 측면으로는 내 삶의 전반이 그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 굴러가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내 삶에는 강력한 내적 동기가 잠재해 있기에 이들과의 관계는 내가 끝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내가 이런 사람인가 생각도 한다. 내가 ‘소중한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만 같은 생각 말이다. ‘인생은 혼자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마저 내 주변에는 이미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의 전체를 뒤흔드는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아마 그때는 ‘소중한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지금은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무언가 슬프고 스스로에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내가 ‘소중한 사람’들 곁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얻고 있음과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이분법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도, 혼자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음에도, 내 영혼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끝없이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음에도, ‘나는 정녕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인 걸까?’하는 질문이 가끔 뇌리를 스친다.
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걸까?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충만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럼에도 아직 완벽하게 ‘소중한 사람’들과의 공생을 체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한다. 대략 10년을 안고 살아 왔던 가치관이 바뀐 거니까. 오히려 이런 질문들을 통해 나는 이 관계들을 더 강건하게 만드려고 하는 게 아닐까?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아닌, ‘난 그들이 있어야 더 빛날 수 있어.’라고 의미를 달리해서 말이다.
맞다. 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이다. 난 그들이 있기에 더 나아가고, 그들이 있기에더 빛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전의 나보다 더 나아가고, 더 빛나고 있다. 나의 가치는 나와 타자의 존중의 일치가 이루어짐에 폭발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현재의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소중한 사람’과 사랑, 존중을 주고받으며 자라는 쌍방향적 인간이 돼 버렸다. 결국,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놈인 걸까?’라는 질문은 나를 궁지로 몰아가는 역할이 아닌, 더 넓고 큰 길로 데려다주는 잠깐의 비포장도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