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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침묵』

종교에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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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가 시작되고 오늘까지 20년,

여기 어두운 일본의 땅에 많은 신도들의 신음이 가득 차고

사제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붕괴되어 가는데,

하나님은 자신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보면서도

아직 침묵하고 계십니다.


86p




'시련에 따른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무신론자와 기독교 신도의 질문은 그 근원은 다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존재유무'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의문을 가진 채로 '하나님이 계신데 억울한 사람들이 도대체 왜 죽어가느냐? 자연재해는 왜 가만 내버려 두는 것이며, 매년 끔찍한 살인사건들과 사고들은 왜 방치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기독교 신자들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책에서 나온 흐름에 따르면, '하나님 당신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모든 것을 바치는데,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왜 당신은 침묵하고만 계신 겁니까'라는 식의 질문이다. 결국 이 차이는, 무신론자는 애초에 하나님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는 것과 기독교 신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마음속 깊이 믿고 있지만, 끝끝내 신앙심 아래에서 죽어가는 우리에게 손길을 내밀지 않기에 하는 일종의 하소연과 같다.



결국 가장 근본적이면서, 핵심적일 수밖에 없는 질문이 '하나님의 침묵'인 것이다. 그리고 이 침묵이 어느 사고 과정을 통해서라도 납득이 된다면, 무신론자는 기독교를 '존중'하게 될 수 있을 것이며, 기독교 신자는 더욱더 강한 신앙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무신론자-신자와의 관계가 바로 독자인 나와, 주인공인 로드리고 신부가 아닐까 한다.




이런 면에서 '강한 신앙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외적으로는 배교한 신부가 사실 그 누구보다 강한 신앙심을 품고 있는 신부일 수 있다.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당신들은 평온무사한 곳, 박해와 고문의 거센 폭풍우가 불어닥치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선교하고 있다.

당신들은 피안에 있기 때문에 훌륭한 성직자로서 존경받는다.

격렬한 전쟁터에 병사를 보내 놓고 막사에서 태연히 불을 쬐고 있는 장군들. 그 장군들이 어떻게 포로가 된 병사를 문책할 수 있겠는가?


272p




오히려 이 병사들이 더 훌륭한 성직자로서 존경받아야 마땅한 게 아닐까? 비록, 그들은 굴복하고 '표시적으로 금지된' 배교의 행위를 했지만, 어떤 그 누구도 자의적으로 하나님을 져버리진 않았다. 정말로 용감히 싸우다 포로가 돼, 죽거나 굴복한 것이다. 누가 이 자들의 죽음과 굴복을 욕할 수 있겠는가? 책에서도 나왔듯, 배교한 신부들이 있던 고문 '구멍 매달기'가 행해지던 장소에 그리스도가 있었다면, 그리스도도 배교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모르겠지만, 표시적으로 금지된 것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르겠다. 마음속에서 진실되게 믿는 것이 있다면, 그 상황, 더군다나 자신 때문에 타인이 고통받는 상황에서는 금지된 것을 저질러도 되지 않겠는가. 나라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종국에 나는 선교라는 행위 자체가 기독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만, 결국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땅에서의 선교든, 위험천만한 땅에서의 선교든, 결국 선교사는 존경받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신앙심을 선교를 통해 더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 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너무 강력해서 주위의 희생까지도 감내하게 만드는 듯하다. 선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선다면, 이기적인 행동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기독교를 전혀 나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심을 자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의) '신앙심'과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그랬다.




기독교가 거짓이라 해도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리다. 기독교가 거짓이라 해도, 하나님이 없다고 해도 사실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마음속에 굳건히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모종의 존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가 있는 것은 삶을 조금 더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만듦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를 한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믿는 것은 다르지만, 믿음을 통해 더 단단해진다는 것 자체는 동일하기 때문에.



기막힌 명작이었다. 서사, 묘사, 전개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내 숨이 턱 막혔으며, 주인공이 무너지는 순간, 나 역시 같이 무너지는 듯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님에도 이 정도의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게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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