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제목에 너무 충실한 책이다!
내가 사는 세계가 지금까지의 인류 전체가 살아왔던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모습은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 독특한 세계에 발 딛고 서 있는 독특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왜곡된 세계에 서 있는 왜곡된 나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지적 대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다.
읽는 순서는 뒤바뀌었지만, 지대넓얕 0 (마지막 3권째)을 읽고 나서 펼친 지대넓얕 1(1권째).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지대넓얕 0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꽤 가볍게 지대넓얕 1에서 다루어져서 내용의 중복에서 오는 새로운 지식의 불충족은 아쉬웠다. 그런데도 유익했음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내 지식의 밑천이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정말 채사장은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지대넓얕 0을 읽고 1을 읽으니 이제 보인다. 채사장은 대중들에게 꽤 다르게 인식되는 것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을 기가 막히게 잇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하나의 줄기를 토대로 모든 개념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시킨다. 단순 암기로 인한 흡수가 아닌, 서사성을 띠는 이야기의 형식을 통한 흡수이기 때문에, '세계'의 '이해'라는 영역에 조금이나마 근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채사장이라는 한 개인의 관점에서 보는 현실들이기에, 이 책이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의 절대적 정의를 말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해당 분야에 정통하거나 전문가라면 그들만의 해석을 통해 채사장의 해석에 반대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대다수가 전문가가 아니고, 잘 모를뿐더러 관심도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각각의 관점을 갖추게 하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리고 나 같이 약간은 똑똑하다며 자만하고 있던 사람에게도 좋은 회초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영역에 있어서, 나는 햇병아리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우와, 그렇구나.'라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던 게 바로 증거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혹독한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무지였다.
관점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세계를 하나의 줄기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탐낼 만한 능력이다. 맥락을 이해한 채로 세계를 훑어보면, 역시 세상은 독립적인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결과물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난 적어도 이 책에서 이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 삶에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계속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지금의 나에게, 이 책은 책의 내용과 더불어 지금 나의 현 상태까지 알려줬다. 지대넓얕 시리즈 같은 책들을 계속 접하며 계속 정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