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위인의 말은 왜 무게를 갖는 걸까?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식인들이 습관적으로 망각하는 것, 즉 인간이 관념보다 중요하고 인간이 관념의 앞자리에 놓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만 한다.
602p
장 자크 루소, 위대한 정신병자
퍼시 비시 셸리, 냉혹한 사상
카를 마르크스, 저주받은 혁명가
헨리크 입센, 거짓 유형의 창조자
레프 톨스토이, 하느님의 큰형
어니스트 헤밍웨이, 위선과 허위의 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념의 꼭두각시
버트런드 러셀, 시시한 논쟁
장 폴 사르트르, 행동하지 않는 지성
에드먼드 윌슨, 구원받은 변절자
빅터 골란츠, 고뇌하는 양심
릴리언 헬먼, 뻔뻔한 거짓말
조지 오웰에서 노엄 촘스키까지, 이성의 몰락
나는 지식인이 되고 싶었다. 아직도 나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런 책에 나온 지식인은 되고 싶지 않다. 지식인 역시 사람이기에 모든 부분에서 완벽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상 (그들이 유명해질 수 있었던 그 무엇이든) 과 완전히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명백한 한계점이 존재한다. 현재 우리에게 통칭 '위인'으로 불리는 자들은 죽고 없다. 그들의 총체적 삶을 직접 바라볼 수 없기에 우리는 기록으로 남겨진 그들의 단편적이고, 사실보단 활자와 그 당시의 사람들에 의한 생각과 평가들로 그들을 봐야만 한다. 역사란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보의 비대칭성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고, 지나치게 좋은 혹은 지나치게 나쁜 시선으로 바라본 인물들을 접할 수밖에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절대적 요소이기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더 크다.
모순된 지식인을 꼬집는 이 책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인 것 같다. 과연, 그들이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게, 타인들에 비해 인류를 조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그들의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들의 사상과 말이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위인이 된 것인지, 위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과 말이 대표성을 갖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무엇이 과연 그들을 위인으로 만든 것일까? 그렇게 추악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많은 환경적, 사회적 요소들로 인한 결과임도 인지하고, 현재로 그들이 온다면 결코 위인이 될 수 없음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위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사상과 말이 잘못된 행동보다 더 가치가 있었기에 용인된 것인가? 윤리가 매해 더 중요해지는 이 시기에 내가 살고 있기에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책에 거론된 이들을 보며 자신이 가진 사상과 실제로 하는 행동이 일치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실제 자기가 가진 생각과 사상과는 다른 행동을 할 때가 꽤 많다. 생각, 사상, 행동 자체의 규정을 짓는 게 우선이지만, 뭉뚱그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들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그들 역시 위인이기 전에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신에 근접한 사상과 통찰력을 가졌을지라도, 결국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지 않는 것이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모순을 그들도 갖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나는 겉과 속이 다른 그런 지식인은 되기 싫다. 아니 지식인이기 이전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사상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런 올곧은 사람이고 싶다. 지식인은 올곧은 사람이 되고 난 후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