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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기억과 사라질 순간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by 책 읽는 호랭이

나는 지금 대략 223,380시간을 살아왔다. 지나간 시간 중 나에게 머물러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일까? 22만시간 동안의 경험들의 집합체가 지금의 나인 것과 모든 순간들이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회상할 수 있는, 추억할 수 있는 기억들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 떠올릴 수 없는, 회상할 수 없는, 추억할 수 없어 기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지나간 순간들은 무엇인가.

일상적으로 해왔던 것들을 반추해본다. 매일 가족과 같이 먹었던 밥, 학교 가는 길, 학원 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등등. 수백 수천 수만 번의 경험 속 지금 나에게 남겨진 그때는 얼마나 되는가. 1%나 될까. 이 미세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마저도, ‘그때의 나’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내가 걷거나 있었던 ‘장소’들이 떠오른다. 매순간 존재해왔던 ‘그때의 나’는 완전히 말소됐다. 완전히 사라져 ‘지금의 나’가 됐다. 마치 숭고한 희생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제의 내가 죽고 오늘의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처럼.

오늘 역시 ‘그때의 나’가 되어 미래에 있을 ‘지금의 나’에게 사라질 기억이 될 가능성은 99%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것들이 의미 없어진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아쉬운 마음이다. 아마, 과거의 나도 행복하다고 하며 살아갔을 텐데 그 행복의 순간들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순간순간들도 미래에 전부 전해지지 못한다.

망각할 수 있기에 인간이고, 망각할 수 있기에 무엇이든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소중함을 잃고, 익숙한 것에 대한 감정들을 상실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이 메커니즘의 치명적인 점은 후회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이 메커니즘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할 수 없는 익숙한 것들에 대한 추억을 꺼내보려해도 도저히 되지 않는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밥을 먹던 그 순간순간들을 떠올리려 애써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흘러가는 일상이었기에. ‘기억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게 인간이기에.

내가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과의 기억들이 나를 만들었지만, 점점 희미해져간다. 깊게 박혀 있지만 떠올릴 수 없게 됐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내 행복들을 영원하 간직하고 싶지만, 한낱 인간일 뿐인 나는 그러지 못한다. 최대한 내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들이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무를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라진 기억’을 줄이는 것과 ‘사라질 순간’을 간직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간극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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