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삼독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가족도 그레고르도 그것에 익숙해져 갔다. 식구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돈을 받고 그도 기꺼이 돈을 내놓았지만 특별한 온정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변신』 74p
한 이 년 사이에 삼독하게 된 책(정확히 말하면 단편인 변신)인 것 같다. 재독은 대학 강의 때문에, 삼독은 독서모임 때문에 하게 돼서 주체적인 독서의 형태로 한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반복 독서의 이로움을 잘 알게 되는 듯하다.
책은 총 3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선고』와 『변신』, 『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 이렇게다. 가족과 공동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관통하는 단편들인데, 변신에서도 알 수 있듯 밝은 분위기의 작품들은 아니다. 작품 내 분위기가 밝다 한들, 의미는 밝지 않다.
가족과 자아를 다룬 『선고』는 카프카의 삶에 대한 이해가 작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오는 부조화, 부조화 속에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카프카의 자아를 바탕으로 단 하루아침에 써 내려간 작품이 『선고』다. 다소 극적인 전개이기는 하나, 의미 전달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효과적이지 않았나 싶다. 자신에게 늘 '선고자'였던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그대로 투영돼 있고, 사회인으로서의 직장인 카프카와 이방인으로서의 작가 카프카의 갈등이 주인공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작품의 결말이 그의 고뇌의 끝을 말해주는 듯하고,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자아 속에서의 고통이 결말로써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변신』은 삼독 째인 만큼, 조금 더 디테일한 부분에서 책을 읽어나갔다. '정말 잠자가 벌레가 된 것일까?', '진정으로 잠자가 벌레가 되어버린 시점은 언제일까?', '무엇이 잠자를 벌레로 만들었을까?', '사실은 가족이 벌레가 된 게 아닐까?' 등등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상을 토대로 그것을 검증하고자 하는 방식의 독서였다. 삼독의 결과 나는 잠자가 실제로 벌레로 변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됐고, 진정한 의미로서의 벌레는 (결코 벌레가 된 적도 없는)잠자가 아니라그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혹독한 자본주의라는 배경 아래, 잠자의 극복-포기-죽음이 극히 처량해 보인다.
확실히 알고 읽으니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큰 틀 아래에서 작은 부분들을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고, 실제 그것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큰 틀 아래에서 사고할 수 있게 한다. 실제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만의 감상이 더 단단하게 구축되는 느낌이 든다.
다음 주에 있을 독서모임이 기대된다. 『변신』만을 가지고 토론하게 될 텐데, 과연 그 친구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레고리의 벌레화'를. 분명히 제각기 다르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벌레가 언제 됐는지, 진짜 벌레가 된 건지 등등에 대해서 각자만의 이유가 있을 텐데, 너무나도 듣고 싶다!
사실 재독한 책은 서평을 쓰지 않는 게 나만의 원칙이지만, 쓰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같은 책이지만, 읽는 순간들의 나는 매번 새로워지고 있으니까, 감상 자체도 많이 다를 뿐더러 그 생각의 기저도 많이 변화하는 걸 내가 느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