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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욱 에세이 『시로』

메시지에 사로잡히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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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너도 좋아하면 좋겠다

너를.


니가 좋아하는 거니까

나도 좋아하기로 했다

나를




나는 이런 감성 위로 에세이를 정말 싫어했다. 아니, 지금도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힘 빠지게 만드는 이런 책들,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런 책들이 나는 정말 싫었다.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지금의 나는 아마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해'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감성 위로 에세이들이 타겟하는 독자 유형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불만이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이런 감정들은 감성 위로 에세이들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그런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감성 위로 에세이를 왜 집어 들게 됐는지는 충분히 기록을 해 놓아야만 할 것 같다. 저저번주쯤, 상무님과 이기주의 책 『언어의 온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나는 그 책이 왜 그렇게 많이 팔렸는지 모르겠고, 너무 별로였다며 혹평을 했는데 상무님께서 '너가 왜 그 책을 재미없게 읽었는지에 대한 정답을 찾아봐라, 그 답을 찾는다면 업무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앞으로 1년이 편해질 것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에세이 작가와 시인 몇을 나열하시며, 이 사람들의 책을 모두 읽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중 한 명이 하상욱이라는 사람이었고, 이 『시로』라는 책이 그 과제 아닌 과제의 첫 책이 된 것이다.



책을 읽는 초반 너무 고통스러웠다. 메시지에만 집중한 나는, 사실 어설픈 위로 따위는 필요치 않았기에 메시지에 감정을 쏟을 수 없는 상태였기에 당연히 눈살을 찌푸린 채로 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반에 돌입해 메시지에서 눈을 떼자 다른 게 보였다. 바로 '언어의 활용'이다. 기존의 것들을 한 번 비틀어 글로써 표현해내는 기술. 나는 중반부터 메시지에서 멀어져, 즉 내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글의 형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서 이미 각인돼 있는 단어나 문자의 재해석이다. 또 다른 말로, 통상적으로 쓰이고 이해되는 문장과 단어들을 재해석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보고는 일반적으로 '힘이 되는 사람'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하상욱은 이 보편성을 비틀어 '힘들게 한 사람'을 글로 풀어낸다. 나만의 조작적 정의로 '언어의 비틀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단어 그 자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속에서의 어떤 뜻의 한계에 갇힌 구성품으로써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이 언어의 비틀기는 생각해보면 꽤 심오한 것처럼 다가온다.



언어를 최대한 다채롭게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많이 알려진 문장의 전환 방법으로써 각종 접두사, 접미사, 어미 등의 변화를 통해 문장을 통째로 다른 의미로 만들어버리는 방법도 많이 사용한다. 다시 억지가 담긴 배치가 보이긴 하지만, 시도 자체는 굉장히 많았고, 그런 관점으로 보니 꽤 재밌게 책장을 넘겨나가게 됐다.



작가의 의도가 정말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고 나에게 딱히 중요하진 않지만 나는 감성 위로 에세이에서 언어의 비틀기에 포커스를 맞추게 됐다. 언어를 무궁무진하게 사용해나갈 내 인생에 있어서, 이런 유머 있고 재치 있는 언어의 비틀기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발상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도 꽤 좋은 훈련이자 사고 방법이 될 것만 같다. 같은 콘텐츠지만 위치를 달리 한 채로 바라보니 완전 느낌이 다르다. 나는 한 사람인데 두 사람의 감상을 한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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