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을 읽는 행위가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집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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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떠올려본다. 나는 어떻게 책을 집어 들게 되었고, 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언제부터 책이 내 삶 속에 완전히 스며들게 되었는가. 이제 어언 4년 차가 되었다. 2017년부터 읽어나간 책은 오늘부로 475번의 번호표를 달게 됐고, 앞으로 몇 번의 번호표까지 달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네 자릿수까지는 거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내 삶은 책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러 책 분야 중에 난 왜 최초에 소설을 집어 들었는가. 사실, 이유라고 하기도 뭐 하지만 단순히 재밌어서일 뿐이다.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나는 아버지를 병으로 잃은 위태로운 가족 아래 놓인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나는 책을 도피처로써 선택했다. 매일매일 미친 듯 읽어나가며, 슬픔을 외면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노력은 애석하게도 나한테 정말 잘 먹혀들었다. 소설은 나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고, 내 마음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억눌러줬다. 그렇게 소설은 구원처럼 나를 지탱해줬다.
소설은, 책은 그렇게 나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아니,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존재였다. 그 이후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된 '책을 접한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독서를 통해서 '지금의 나'가 됐다. 아마, 지금 생각하는 내 모습의 태초는 책과 함께 시작했을 것이고, 나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다. 과장되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인생이 내 앞에 펼쳐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책을 매번 새롭게 깨달음으로써 지난날의 무지와 오만을 다시금 되새기고 모든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됐다. 책이라는 매개체에 끌려다니던 과거와 현재의 이승진이라는 존재는 책을 읽어나가는 순간마다 책 이상의 무엇을 갈구하는 이승진이 되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늘 긍정적인 나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나는 책이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채로, 더 크고 넓고 굳건해지려 나를 만든 책을 나를 위한 양질의 재료로 구실하게 한다.
나에게 책을 읽지 않은 인생은 없었겠지만,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아마도 없었을 것만 같다. 나에게 끊임없이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은 내 곁에 없었을 것이며 (아마도 책을 읽지 않았다면 타자성의 강력함을 몰랐을 것이기에 스스로가 타인을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인지하지 않기에 나에게 그런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내 모습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를 책의 세계로 인도해 준 한 사람, 책을 읽는 나에게 존중을 표하며 내 존재에 강한 흥미를 갖는 사람들, 책을 읽은 내 경험을 거리낌 없이 수용하는 사람들. 감사해야 할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내 주변에는.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책을 읽어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 너무나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 행복의 큰 부분은 책이라는 존재와 책을 읽는 나 라는 존재에서 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