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향하는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가 '인간적'인가?
유전적 강화와 복제, 유전공학 기술이 인간 존엄성에 위협을 가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문제는 그것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어떻게' 손상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들이 인간의 자유나 번영의 어떤 측면을 위협하는가?
생명공학 기술의 네 가지 사례 근육 강화, 기억력 강화, 신장 강화, 성별 선택을 통해 마이클 샌델 본인이 가진 생명 윤리를 주장한다. 이를 토대로, 인간이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과정에 의문을 던지며 독자를 사정없이 괴롭힌다. '이건 괜찮은데 이건 안 돼? 왜? 근거가 뭐야?'라는 꼬리물기식 질문의 무한 반복이다.
책이 다루는 내용들을 제외하고서 마이클 샌델의 이런 식의 꼬리잡기식 질문들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실제로 내가 이렇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깊게 생각해야 되는 이야기들을 나눌 때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질문한다. 대답한 것에 대해서 또다시 생각하게 하기.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스테로이드는 안 되면서,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는 것은 괜찮은가? 결국 결과에서 차이를 발생시키는 요소인데. 유전자 조작은 안 되고, 부모 생각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괜찮은가? 아이의 삶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똑같은데.
내용적으로는 큰 아쉬움이 있는 책이다. 물론 생명윤리를 다루는 책임은 알았지만, 나는 완벽이라는 개념을 조금 더 포괄적으로 담고 있기를 바랐는데, 굉장히 지엽적으로 다루고 있기에 생명윤리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 논문으로 출간된 것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나도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내 끝이 어디일지 정말 궁금하기 때문에, 끝 지점을 더 높이 더 멀리하는 데 꽤 많은 것을 투자한다. 나의 끝을 규정하긴 싫어서 '완벽에 이른 나'는 내 인식 속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지금 생각하는 '완벽의 기준에 부합하는 나'는 언제쯤 찾아올 지 궁금하다.
아마도, 지금의 내 모습도 과거의 나가 생각했던 '완벽에 이른 나'일 수도 있겠다. 매 순간이 '최고의 나'일 수 있는 방법.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며, 끝없이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매 순간들이 '최고의 나'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는다.
스스로에게 완벽을 정의하는 순간, 완벽은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냥 매 순간 행복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해 나가면 된다. 그러면 어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완벽한 나'가 돼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꽤 '완벽한 사람'인 채로 존재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