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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전락』

과거의 자신에게 머무르는 순간 전락은 고개를 든다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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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살에 대한 게 전부였지만, 그것을 흉내내지는 않았다.


죽고 싶어 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였으니까.




재능에 대한 찬사 속 완벽한 배우로 살아간 사이먼 액슬러. 어느 순간 자신의 재능이 송두리째 사라짐을 깨닫고 전락하고 만다. 전락한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사랑을 깨닫고 전락에서 벗어나려는 찰나 이미 한 번 전락했던 그의 삶은 쉽사리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의 삶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전락의 공간으로 그를 인도한다.




사이먼 액슬러 삶을 다룬 만큼, 그의 직업을 이해하는 것이 그의 전락한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연극 배우였던 그의 삶과 '연기'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연기라는 키워드로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해보자면, 눈부신 재능으로 칭송받았던 순간은 '재능이 충만한 사이먼 액슬러'를 연기했던 사이먼 액슬러고, 재능이 아예 없어져 무대를 여럿 망쳐 전락한 순간은 '전성기가 지나 슬럼프에 빠진 노년 배우 사이먼 액슬러'를 연기했던 사이먼 액슬러로 볼 수 있다. 그의 삶의 모든 순간들은 그 순간의 자신을 연기한 것일 뿐이고, 그런 그의 삶의 최후 역시 연기로 막을 내린다.




전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락은 어떻게 하게 되는 걸까. 사이먼 액슬러가 재능이 없어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면 과연 전락했을까? 인간은 매 순간마다 변하고 절대 한순간에 머무르지 않는 존재인데, 사이먼 액슬러는 '재능이 충만한 실력 있는 배우'로 영원히 남고 싶었던 것일까? '재능이 충만한 실력 있는 배우'를 연기할 수 없게 되자, 그때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전락에 빠져버린 걸까.




아마도, 그는 그 시절의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의 자신이 너무 좋았기에, 너무 행복했기에,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그는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지체 없이 흐르지만, 그는 그곳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무한대로 팽창하는 그때의 자신과 현실 사이의 갭만큼, 전락은 더 극적이게 된다.




과거에 머무르고 하고 싶은 순간 전락은 서서히 눈을 뜬다. 현재의 자신에 의문을 가지고 부정하는 순간 전락은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 순간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면 전락은 존재할 수 없다. 전락이라는 개념이 삶 속에 침투할 수가 없다.




난 독서에서 행복을 느낀다. 서평을 쓰고 나누면서 2차적인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난 2~3년 전보다 월등히 독서량이 적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불행하고 전락해야 하는가? 천만에, 그때의 나는 분명히 행복했지만 지금의 나는 더 행복하다. 독서를 그때만큼 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행복을 채워나가고 있다. 난 '1일1독하던 이승진'을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과거에는 분명히 스트레스받았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나의 상황으로 하여금 불만을 가졌었고, 당시(과거)에 느끼던 행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다. 앞으로 다가올 풍파에 내가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을까?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의 사랑하는 내 모습을 보전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이런 고민들이 깨졌다. 난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고, 무엇보다 나는 시시각각 변해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며칠 전, 몇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하게 다르다. 다르지만 과거의 순간들이 무의미하진 않다. 그때의 나가 지금의 나니까.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고. 그래서 나는 '순간의 나'들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의 삶 속에는 전락이 없다. 과거에 머무르려 애쓰지 않으니까. 전락이 존재할 수 없는 삶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물론, 이런 삶이 구축된 뒤의 나에게 존재를 흔들 만큼 강한 충격이 온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내 생각으론 어떠한 순간의 현상들도 나를 전락으로 빠뜨릴 수는 없을 것만 같다. 나는 모든 현상으로 하여금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재를 갖고 있고, 인생의 모든 것이 유의미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모든 것에서 나를 주체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후로부터, 내 삶에서 스트레스는 없어졌다.




내 삶에 시련과 슬픔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지만, 전락만큼은 결코 등장할 수 없다. 난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스스로를 전락으로 빠뜨리지 않을 자신이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내 삶과 전락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극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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