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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끌림』

돌고 돌아 결국 사람만이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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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계절이라는 핑계로 당신은 그들과의 여행을 계속했고 한 아궁이에서 지은 여러 끼니를 나누어 먹으며 낯선 풍경에 놀라 단체 사진을 수없이 찍으며 각별한 감정들을 나눴죠. 심지어 돌아오기 싫었던 거예요.


그래요. 삶은 그런 거예요.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런 것.




여러 나라를 돌며 느낀 감상들을 적은 이병률의 여행 기록. 이 책은 앞의 문장과 같이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어쩌면 정말 심플하면서도, 진부할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 하지만, 내가 해보지 못한 아마도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경험들을 한 한 개인의 감상 속에서 나는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다.



결국은 사람이다. 어느 때, 어느 시간, 어느 행위, 어느 상황 속에서도 결국은 사람이 있기에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관계가 생기며 의미가 한 겹 쌓인다.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경험을 가진 나 역시 이렇게 생각한다.



작년부터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동해, 부산, 안동, 제주도, 주변 펜션 등등 여러 곳을 다녀왔다. 우리가 처음부터 여행을 계획할 때 했던 주고받은 이야기가 있다. '언제 가든, 어딜 가든, 날씨가 어떻든 재밌을 거야. 그러니까 일단 가자.'



실제로 우리의 여행엔 좋지 않았던 날씨가 훨씬 많았다. 태풍이 와서 하루 종일 숙소에 머문 적도 있었고, 습하고 더워 외부 활동을 하기 어려운 날씨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행복했다. 우리 모두 속으로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산토리니를 여행하든, 어디 유명하지 않은 벽화마을을 여행하든 우리는 똑같이 행복하다.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갔다는 감정을 제외하고, 우리는 늘 행복했고,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같이 그 '장소'에 간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그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관계 속에서 나는 한없이 충만하면서도 끝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역시 이 친구들이 있어야 해, 이곳에서 나는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어'라고 느낄수록 언젠가는 찾아올 이별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혼자서 살아갈 순 있지만, 지금처럼 행복을 충만하게 느끼는 순간의 내가 이 친구들이 없어졌을 때도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든다.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행복이 찾아올 것임을 확신하고 있고 지금의 나만이 할 수 있는 걱정인 것을 알고 있기에 행복한 고민과 걱정이다.



내가 현재 맺는 대부분의 관계들은 모종의 끌림 속에서 존재한다. 사랑, 존경, 베풂 등 정신적인 영역의 무엇. 강한 끌림은 둘을 결국 하나로 만들어준다. 그렇게 유대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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