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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배우 『신호등처럼』

타자에게 자신의 무언가를 전달하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하기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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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민 상담을 자주 한다. 내가 고민을 토로할 때도 많고, 반대인 경우도 많다.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내 모든 것을 온전히 담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때는 오로지 나는 고민 상담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고민을 토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고민 상담을 해 주는 내 모습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어떠한 태도로, 어떠한 마음으로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했던가? '고민을 토로하는 나'가 타자에게 기대했던 것들을 '고민을 들어주는 나'는 갖추고 있었던 걸까?

뒤돌아보면, 지난날의 '고민을 들어주는 나'는 고민을 토로하는 자들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이해해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책임감 없이 내가 살아오면서 겪으며 깨달아온 것들을 단순히 이야기해줄 뿐이었다. 나의 말들은 어느 누구에게는 큰 위로가 됐을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고민을 토로하는 입장에 있을 때, 내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에게 해주는 말과 그 사람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아마, 나에게 고민을 토로했던 이들 대부분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아니, 고민의 영역이 아니어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나는, 내가 해주는 말에 진심을 담을 수 있도록 '내가 말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무던히 인식하며 지낸다. 내가 타자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오로지 내가 겪어온 삶에 기반해서 해줄 수밖에 없고, 내가 겪어온 경험들은 타자로 하여금 이질적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타자에게 내 경험을 요구하지 않는다. A라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B라는 '내 존재'를 말해준다. 결국 중요한 건 A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나와 그 과정이니까.

내 진심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쉽지만 어렵기도 한 방법이 타자에게 말한 수많은 말들 속에 존재하는 내 모습을 타자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이다. 쉽게 말하면 내 말에 신뢰성이 생기게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배우의 이 책이 꽤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 분명히 이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했을 말들은 내 삶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은데, 와닿지는 않은 그런 느낌이었다. 나에게 글배우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 사람의 말이 텅 빈 껍데기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몰입을 방해한 느낌이었다.

나에게 다가온 어느 타자도 이렇게 느꼈을까 괜히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더욱 내 마음과 생각을 통해 내뱉는 말들과 실제 나의 행동을 일치시키려 더욱 노력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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