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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언어의 온도』

변해가는 나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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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재독을 독서의 횟수로 세지 않는다. 삼독에 사독을 거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내 독서 기록 파일에는 단 한 줄만이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왜였을까. 아마도 내가 여전히 독서의 '수'라는 정량적인 수치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근본적인 이유를 파고들어보면, 난 책을 읽고 난 순간순간을 남기고자 글을 쓰는 것이다. '그때의 나'를 기록하고자 하는 용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매 순간 변한다. 책을 읽는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같은 책을 읽어도 매번 읽는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다른 '지금의 나'다. 내 서평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겨보면, 재독을 통한 서평은 더욱더 그 본질적 의미에 부합하는 행위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거의 딱 2년 전에 읽었고, 별점 2점이라는 냉혹한 평가와 함께 '언어의 온도를 느낄 수 없었다'라는 혹평을 내렸다. 그러고는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의문을 가졌던 듯하다. 시간이 흘러 변한 내가 읽었다고 이 책의 평가가 완전 뒤집히진 않았다만, 이제는 약간 알 것 같다. 내가 왜 그때 그렇게 읽었는지.



그때의 나는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지나치게 집중해 읽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까지도 이런 경향이 짙었다. '책과 거리두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빠져나오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대게 감성을 자극하는 에세이는 내용 그 자체의 영양가보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구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그때의 내가 싫어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감성적인 글을 느낄 만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로지 지식 획득에 빠져든 채, 그렇지 않은 것들은 절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때의 내 존재 앞에서 『언어의 온도』는 혹평을 받기에 완벽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난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동했고, 내 필사 노트에 몇몇 문장들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에의 의구심은 사라졌다. 사실, 베스트셀러에 어떤 조건이 필요하겠는가. 모든 베스트셀러가 잘 쓰인 책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모두 못 쓴 책은 아닐 것이다. 시장은 단 하나의 요소로만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렀는지 분석하는 건 순전히 한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오만한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순간, 난 아직 그 책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점을 캐치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읽고 느끼면 된다.



내가 앞으로 에세이나 감성 시집을 집어 들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두 달 사이에 읽었던 독서들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주었다. 외부의 힘이 없었다면 절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을 그런 경험과 느낌이었다. 이제는 포용할 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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