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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구체적이지만 무척 흐린, 사랑인 듯 사랑이 아닌 듯한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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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잘 모르겠다. 아니, 잘 모르는 게 지극히 정상적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오로지 기억의 산물이자 추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하는 기억과 추억을 근본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나의 이해 부족이 어떻게 보면 합당해 보인다.



기억과 추억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피스가 몇 개 부족한 퍼즐과도 같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거쳐온 조각들은 결코 완성된 무엇이 될 수 없다. 지금 어떠한 하나의 사건을 떠올려보자. 그 어떤 것이든 괜찮다. 지금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것을 회상했을 때, 당신은 그것이 완전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나는 '사람이 회상하는 행위'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는 절대로 사람은 현상만을 떠올릴 수 없다고. 무조건 어떠한 사고를 거쳐 현상 이상의 의미를 끌어내고 왜곡시킨다. 인간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결정적인 힘임과 동시에, 우리가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는 한계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더 아름답게, 더 찬란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더욱 슬프게, 더욱 우울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 역시 인간이다. 인간은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다. 같은 현상 아래에서 정말 강해질 수도 있지만, 한없이 약해질 수 있다. 아마, '멘탈이 강하다'라는 사람은 같은 현상에 놓였을 때 한없이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반대가 멘탈이 약한 사람이고.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인간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회상의 행위' 단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그래서 뒤라스의 이 회고록 같은 책은 한없이 찬란해짐과 동시에 한없이 우울해진다. 모든 것이 기억이고 추억이니까. 15살에 중국인 부호와 욕정을 즐긴 순간들도 어느 순간에는 한없이 아름다웠다가, 어느 순간에는 한없이 슬퍼진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반의어는 아니지만, 기억의 행위를 통해서 같은 현상이 다른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독자는 그냥 주인공의 오락가락하는 회상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폭풍 같은 회상 속에서 우리는 절대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책 속에서 이야기 나올 만한, 인종에 대한 문제, 가정 폭력 및 가족 전반에 대한 문제, 미성년과 성년과의 사랑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는 전혀 시선이 가지 않았다. 제일 먼저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것들이 의외로 전혀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그냥 내가 온전히 화자에게 끌려다녀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깊이 파헤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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