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에 취약한 나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웠던 책
지구라는 행성의 70억 인구에게 주어진 선택들은 늘 우리를 제약하는 강과 산, 사막과 호수, 그리고 바다에 의해 어느 정도는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고, 자녀를 길러내는 땅이 중요하다.
얼마 전 서점을 서성이다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을 펼쳤다. 아마도, 대략적인 내용은 꼭 읽어야 할 인생 책 리스트와 그 이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독서가들이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난 유치하게도 항상 그런 책들을 보면 목차를 보고 내가 읽은 책이 얼마나 되나 훑어보곤 한다. 그러곤 내가 읽은 책 제목의 활자를 발견하면 괜스레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그 책의 목차에서 난 이 책을 발견했다. 그 시점은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이자 서평을 쓰기 전이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뿌듯함이 아닌 안타까운 묘한 감정을 느꼈다.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에 느꼈을 보편적 감정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내 짧은 지식 탓일 테지만, 인생 책까지 갈 것도 아니고 필독서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유익함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세계사를 세계지리로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냈기에, 지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재밌게 읽었으리라 본다. 허나, 나는 학창 시절부터 지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학생이었기에 이 책을 마주한 것은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문제를 마주한 격이었다.
중국, 미국, 서유럽, 러시아, 한국, 일본, 남미, 아프리카, 중동, 인도, 파키스탄, 북극을 지리적 요소를 사용해 한껏 설명하는데 꽤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기는 했다. 중국과 인도를 가로막고 있는 히말라야가 역사상 그 둘의 충돌을 최소화시켜줬다는 부분이나, 축복받은 미국의 땅과 상반되는 저주받은 남미의 땅, 북극이 줄어듦에 따라서 러시아가 약진할 것이라는 부분 등은 세계 정세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저 그런 이 독후감이 나의 한없이 낮은 지식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책을 읽는 정량적 시간 자체가 줄기도 했고, 책을 통해 느끼는 성장 곡선이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요 몇 년 새 책을 통해 느껴왔던 급격한 성장들이 요즘은 회사를 다니면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책만이 오로지 내 성장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실무가 내 성장의 크나큰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결코 책을 떠날 수 없을 것이며, 떠날 생각도 없다. 지금의 나는 실무를 통해 급격한 성장 곡선을 그릴 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무한한 성장은 책에 존재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책은 영원히 읽어나갈 수 있지만, 일은 언젠가 그만두니까.
오랜만에 쓰는 서평인 만큼, 책에 대한 애정을 스스로에게 더 불어넣고 싶다. 읽지는 못해도 늘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꼭 갖고 다니는 내 모습을 다시금 돌이켜보면, 아직도 나는 책을 사랑하고, 책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