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있는 악역의 표본을 제시한 참고서 같은 책
'양들의 침묵'이라는 언어에는 무언가 특별한 힘이 느껴진다. 보통 우리가 유명한 책들을 논할 때는 흔히 '내용은 모르지만 책 제목은 아는'의 꾸밈말을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양들에 침묵'에 이 꾸밈말은 애매하게 부족한 느낌이 든다. 내 주관적 추측이지만, '양들의 침묵'은 사람들에게 책인지조차 모르지만 그 언어의 조합 형태는 아는 그런 언어처럼 느껴진다.
난 이현호 시인의 '양들의 침묵'이라는 시도 읽었고, 영화화의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책의 내용은 '한니발' 이 존재한다는 것 빼고는 알지 못했다. 안다고 하기도 부끄러운 것이, 한니발이 사람인지 장소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고 책의 장르가 스릴러 및 추리소설의 형태를 띠는지조차 모르는 무지 그 자체였기에.. 내 기준에서 나는 '양들의 침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문학 속에 존재하는 악역들은 착하기만 한 선역이 인기가 없듯 단순히 죄질이 나쁘다고만 해서 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하지는 않는다. 악역 역시 선역과 같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있으며, 하나의 구성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개성이 필수적이다. 개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본 작품의 '한니발 렉터'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지 않나 평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면서도, 그렇게 등장은 많이 하지 않고, 그 와중에 대사도 거의 없다. 그는 그냥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존재만 할 뿐인데, 그를 중심으로 엄청난 파장들이 일어난다. 이런 그의 파급력과 함께 그의 성격, 직업, 전과 등이 뒷받침을 해 활자 속에서 그의 캐릭터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독보적 개성이 탄생했다고 본다.
한니발을 제외하고도, 메인 사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고 독특한 소재를 가져옴으로써 매력적인 책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여기에 한니발 렉터라는 의문투성이 캐릭터를 투입함으로써 매력도는 물론 후속작에 대한 고리까지 만들어놓은 작가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사건 자체에 대해 어떠한 평을 하고 싶긴 하다만, 거대한 스포가 될 것 같아 쓸 수가 없다. 충격적이고 기괴하고 상상이 잘 안 되는 그런.. 실제로 마주하게 되면 끔찍할 것 같기도 하고, 살인의 동기 자체가 굉장히 그럴듯하고 실제로 발생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왠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유형의 살인마가 아닐까 싶다. 도대체 영화는 이걸 어떻게 표현해냈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도 보기는 또 싫고..
요새 책을 충분히 읽지를 못해 후속작을 읽을지는 모르겠으나, 피바람을 예고한 한니발이 미쳐 날뛸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