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 <종이 동물원>

격이 다른 상상의 품질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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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1211_112612368.jpg 심심해서 그려 본 종이호랭이~

총 14개의 작품이 담겨 있는 단편집. 모든 작품이 우리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베이스를 완전히 부수고 새로이 구축한다. 감상적인 면으로는 테드 창의 <숨>과 정말 유사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내용은 다소 다르다.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 앞에 선 느낌이 같다고나 할까.


1. 종이 동물원

중국 문화대혁명의 아픔을 겪은 어머니의 사랑을 정말 감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살기 위해 카탈로그에 본인의 인적 사항을 거짓으로 기입해 미국인과 결혼한 어머니, 모국어인 중국어를 사용할 수 없었던 어머니, 중국인인 어머니를 싫어했던 아들. 이 요소들을 모성애라는 큰 키워드로 아울러 감동을 극대화한다. 아들에게 강력한 충격을 줌과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굉장히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2. 천생연분

앞으로 다가올 데이터 시대에 대해 강력한 메세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완벽한 개인 비서의 기능을 할 AI가 과연 인류에 있어서 이득이 되는지 해로운지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그런 AI 비서가 있다면 생활은 편해지겠지만,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사고능력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고, AI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켄 리우가 이 작품에서 던지는 메세지는 결코 간과할 만한 것이 아니다. 명백히 다가올 미래이기 때문에.


3. 즐거운 사냥을 하길

관습과 전통이 진보와 기술과 융합된 매우 신기한 작품이다. 한 가지의 소재를 신화라는 전통적인 것과 기술이라는 진보된 것으로 통일되게 끌어낸 아이디어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형태에서 여우로 변신하는 것과 기계가 되어 여우로 변신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시사하는 듯하고, 홀대받던 중국인이 세상에 없던 혁신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그 대우를 극복하고 자신들을 무시하던 영국인들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처럼 느껴졌다.


4. 상태변화 (영혼+성장)

자신의 영혼이 사물에 부여되어, 목숨이 온전히 스스로에게 달려 있지 않다면 어떨까? 본인이랑 관련이 깊은 사물에 영혼이 부여되는 것 같은데, 내 영혼이 만약에 어떤 사물에 담겨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 책이 아닐까 싶은데. 만약에 책이라면 내가 그것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것이 과연 좋은 건가? 뭔가 목숨에 필사적이게 되어 생명의 귀중함을 느낀 채로 살아갈 것 같기도 한데, 지나치게 죽음이라는 것에 종속되어 살아갈 것만 같기도 하다. 그리고 영혼이 담긴 물체가 '상태변화'했을 때 성장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안절부절못하며 한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가, 그것이 상태변화해서 전에 매달리던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이 성장이라는 걸까?



5. 파자점술사

공산주의자가 당시 미국에 얼마나 큰 경계의 대상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대만에서 중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받는 부당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대만과 중국이 사이가 안 좋다는 점을 알고 읽으니 어느 정도 감정 이입이 가능했던 것 같다. 이 상황 속에서 부당함을 깨닫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 선 무력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서 사상 앞에 작아지기만 하는 개인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중국인이 받는 차별인 듯하다.


6. 고급 지적 생물의 책 만들기 습성

저마다 다른 독서의 방법을 범우주적으로 세계관을 넓혀 인종적 차이로 이야기화한 작품이다. 지식을 후대에 전한다는 컨셉과 스토리는 매우 참신하다. 사실은 나도 후대에 지식을 전하기 위해 나만의 책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행성의 인류처럼 책을 읽고 있을까? 아니면 독자적인 행성 안에서 오로지 나만의 독서를 하고 있는 걸까?


7. 시뮬라크럼

과거를 붙잡고 싶은 마음과 그 순간을 포착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표현했다. 진보되고 참신한 소재와 상상 속에서 헐벗은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사진 이상의 기능을 하는 '시뮬라크럼'의 도입은 과연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 '시뮬라크럼'은 부작용에 대한 규제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심리치료 같은 쪽으로 긍정적인 방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한다.


8. 레귤러

인간의 호르몬 작용을 통제할 수 있는 레귤레이터와 망막 속에 심어 놓을 수 있는 카메라라는 상상할 수 있지만 낯선 기술 2가지를 주 소재로 삼아 전개되는 작품이다. 이를 통해서 모성애와 중국 고위 관료 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최상위 고위급 관료 사회와 최하위 창녀 사회의 강한 연결성을 시사하면서 독자들에게 아이러니함을 전함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장편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스토리 구성이었으며, 발상 자체도 독특하고 기발해 무척 재밌게 읽었다.


9.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다소 이해가 어려운 단편으로 세계관을 범우주적으로 끌고 가 그들이 가진 근본적 특성을 존재 의의 및 생명과 연결한다. 이 작품에도 모성애가 짙게 나타나긴 하지만 세계관 전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워서 이 모성애 역시 타 작품에 비해 와 닿지는 않았다.


10. 파

영생과 기계화를 소재로 다뤘으며, 정신적 존재와 육체적 존재 사이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생을 선택하지 않고 늙어감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심리를 가지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될까? 영생을 하면 인간이기를 거부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반대로, 기계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 걸까? 더 나아가, 인류는 우주를 결국 개척하게 되는 걸까? 아주 먼 미래를 심도 있게 고민하게 만드는 대단한 흡수력이 있는 작품이다.


11. 모노노아와레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영웅담을 색다른 소재로 감동적이게 표현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진행시키는 기법이 주인공의 선택과 용기에 더욱더 큰 의미와 감동을 부여하기 위한 효과적인 기법인 것 같다. 일본인의 특성 (수동적이고 침묵적인 면)을 극한의 상황 속에서 보여줌으로써 그 특성의 일반적인 면을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12. 태평양 횡단 터널 역사

제국주의 시절 피지배국의 국민이 겪는 고통과 부조리를 나타낸 작품으로, 태평양 횡단 터널 건축 현장으로의 강제 징용과 징용자의 입장이 아닌 지배자의 입장으로 전개한 것에 기묘한 참신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기러기 아빠의 슬픔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자신이 살릴 수 있었던 포로를 죽임으로써 트라우마를 갖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전쟁의 한 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13.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의 진실을 운반하려는 영웅담이다. 부정 위에 선 국가에서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전호리'의 모습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의 모습이 보인다. 은폐되어 있던 역사를 후대에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노래'를 소개해주는 것 같다. 과연 우리는 부정부패 위에 우뚝 서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전호리 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왠지 이 질문이 우리가 일제강점기로 간다면 독립운동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와 비슷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4.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731부대에 대한 역사를 기반으로 '과거를 파헤치는 것'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과거의 아픔을 개인적 문제로 봐야 하는지 국가적 문제로 봐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를 파헤치는 것에 대해 '이제 와서 왜?'라는 의문을 갖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반응이다. 하지만 진실된 역사를 후대에 전하는 게 미래의 선조인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일단 과거를 볼 수 있는 기술이 유용한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유용하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과거를 바로잡는 게 가능한 일일까?


중국에 관심이 많거나, 중국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상상력의 폭 자체를 넓혀줄 수 있는 미친 수준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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