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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기다림은 정체가 아니다.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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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을 하는 것이다. 서로 질문하기, 되받기, 욕하기, 운동하기, 장난과 춤추기...


115p




제목에서부터 느껴오는 강력한 고도에 대한 호기심, 작 중 등장하지도 않지만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붙잡는 고도의 정체에 대해 책을 읽은 독자든, 제목만 아는 독자든 모두가 궁금해할 거 같다. 아니,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고도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질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책을 읽은 후의 나는 호기심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됐다. 바로, 고도가 아닌 '기다림'이라는 행위 혹은 인생의 동의어에 말이다.



각 에피소드의 끝에 다다른 뒤, 항상 그만 가자고 이야기하는 에스트라공과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며 붙잡는 블라디미르의 고정적 패턴이 눈에 띄었다. 항상 뜬금없이 가자고 하는 한 명과 늘 기다려야 한다는 또 다른 한 명. 가거나 기다리거나. 어떻게 보면 뒤로는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영속적 특성을 이분법적인 두 동사로 나타낸 듯하기도 하다.



기다린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뭘까? 어떤 것을 바라는 게 기다린다는 의미랑 유사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기다리지 않는 인생이 존재하는 걸까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어 찾아온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바라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기다리고 있다.' 능동과 수동의 의미 차이가 다소 느껴지지만, 크게 다를 바 없는 문장이다. 결국, 기다림은 정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깨달은 기다림이란,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바람과 동시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뭘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이런 측면에서 그 두 주인공을 바라보면, 아마도 그들은 삶의 목표 비스무리한 것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무기력하고 허탈한 삶에 그들은 고도를 바라며, 삶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들은 살고 싶었을 뿐이다. 고도가 안 온다면 목이나 매자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내 추측에 더 확신을 갖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기다리고 있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기다리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삶은 기다림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노력 여하를 떠나 누구나 더 나은 삶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내면의 또 다른 나는 더 멋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내면의 나에 부응하기 위해서 나는 항상 모든 것을 정진할 수밖에 없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기다림의 의미를 되새겨가면서 고도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다 다르듯, 모든 이들로 하여금 고도는 새로운 의미를 갖고, 결과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 우리는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난 고도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고도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다.

난 고도를 기다리며 운동을 하고 있다.

난 고도를 기다리며 일을 하고 있다.

난 고도를 기다리며 사랑을 하고 있다.

난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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