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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거대한 세계 속의 한 여성과 자신을 소거해야만 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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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 두 편이 수록돼 있다. 전자는 저자의 어머니가 자살한 후 쓴 산문이며, 후자는 첫 번째 와이프와 결별 후 아이를 혼자 기른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한 소설이다.



전자 『소망 없는 불행』의 경우, 여성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억압받던 그 시기에 한 여성이 주체성을 찾아가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주제만 보면 희망이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지만, 저자는 세계라는 거대한 힘 앞에 한 개인이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것을 보란 듯이 자신의 어머니의 삶으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희망이 없는, 아니 희망이 아예 없는 것보다 더 좋지 않게 희망이 있으려다 없어지는 그런 '소망 없는 불행'을 연출한다



저자는 마치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가 아닌 듯, 그녀의 일생을 자식으로서의 감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하여 글을 써 나간 듯한 느낌이다. 자식으로서 참 냉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잔혹한 세계에 희생당한 어머니의 삶을 주관 없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남기고자 했던 게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저자의 어머니가 살아온 삶은 현대에 살아가는 내가 보아도, 상당히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의 삶처럼 느껴진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게 이런 말인가 싶기도 하다. 진일보한 현재 시대에 저자의 어머니가 존재해 있다면, 분명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만 같다. 세계 앞에서 단 한 명의 개인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그때의 진취적인 여성에게는 오로지 수면제를 통한 죽음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후자 『아이 이야기』는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인데, 주목할 만한 것이 아빠는 오로지 '그'로만 지칭되고, 아들은 오로지 '아이'로만 지칭된다. 3인칭적 시점을 통해 아빠와 아들의 삶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단순히 한 가족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전체의 '아빠와 아들', 특히 '아빠'를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이'의 양육을 통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하나씩 자기를 소거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그', 즉, 아들이 있는 아빠는 온전히 '그'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아빠가 된 적이 없어서 이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지만,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런 느낌이겠구나 한다. 한 사람이 아닌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는 순간, 그는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작품은 그런 하나의 불가항력적 '현상'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 '무엇'이 되는 순간 '그 전의 무엇'이 될 수 없는 인생의 무차별적 폭력성을 한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주제를 확장시킨 채로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그 어떠한 사람도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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