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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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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이 있으면서도 남과는 다른 사상이어야만 철학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철학은 앞서 있던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16p




주체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요, 진리는 그 목표점입니다.


44p




어렴풋이 떠오른다. 철학을 알고 싶고, 하고 싶은 내 불타는 욕망을 보신 한 분이 입문서로써 이 책을 추천했던 게 작년이다. 패기 있게 바로 주문했고, 200p 가량 읽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거기서 멈췄다, 반년 전쯤일까? 문득 내 책장을 봤는데, 어림잡아 중간 좀 안 되는 지점에 책갈피가 꼽혀 있는 버림받은 이 책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선 다짐했다. '내가 저 책을 다 읽었었나...? 왜 읽다 말았지? 다음 책은 저거다.' 꼽힌 책갈피를 과감하게 뽑고,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작년보다 조금 성장한 채로 (철학적 사유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정도) 운 좋게 이 책을 다시 펼쳤다.





명백한 중세 철학의 한계점인 '신의 존재'가 깨지면서 나타난 근대 철학. 주체를 내세우며 철학에 있어서 신의 자리를 빼앗아버리고, 진리를 탐구했던 데카르트로 인해 철학사에서 신은 죽었다. 근대 철학은 그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흄, 칸트, 피히테,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훔볼트, 소쉬르, 비트겐슈타인, 레비스트로스, 라캉,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의 철학을 다룬다.





근대 철학의 기본 틀인 주체와 진리를 중심으로 각 철학자, 심리학자의 사상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단순 설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철학적 사상이 갖고 있는 본질적 한계와 같은 한 단계 넘어선 사유까지 설명한다. 말 그대로 '강의'의 느낌이다. 마치 '근대 철학 톺아보기'라는 강의명이 어울리는 듯하다.





철학서들은 확실히 어떤 관점을 갖고 전개시키느냐에 따라 크게 방향성이 갈리는 것 같다. 시간의 관점으로 역사적 전개를 펼칠 것이냐, 아니면 사상적 진보의 관점으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게 할 것이냐 등 책이 어떤 관점을 갖고 쓰여졌느냐에 따라 독자 역시 그 관점을 명확히 갖고 읽어나가야만 온전한 독서가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이는 오직 철학서에만 한정된 '폐쇄성'으로 정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내가 해 왔던, 해 가는 모든 독서는 저자가 가진 관점은 오로지 참고 사항일 뿐이었다. 오로지 내 느낌이 전부였다. 하지만, 철학서는 저자가 가진 관점 없이는 독서가 독서로써의 기능을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길잡이 역할 없이는 제대로 탐독할 수 없는 나의 사유 수준 때문이 명백하다.)





작년 호기롭게 '철학하고 싶다!'라고 외치던 내 모습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이번 독서로써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오로지 철학자의 사상들을 흡수하는 데에만 초점을 뒀었다, '누구의 어떤 사상은 이러이러하구나'하는 단순 일반 상식의 축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은 뭐랄까, 이해의 관점을 충분히 관철하려고 하고 있다. 누가 무슨 철학을 전개했다기보다는 '누구의 철학은 이러이러하구나~, 이런 사유가 앞전의 사상을 박살냈구나~'하는 그냥 흐름을 느끼고 있다.





게 중에 마음에 드는 철학 (예를 들어 들뢰즈, 가타리의 차이의 철학) 은 단독 사상을 다룬 책을 읽으면 되는 거고, 그렇게 내 사유의 범위를 확장시키면 된다. 그렇게 내 사유의 한계는 더 넓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 크게 키워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내 마음속 능숙한 철학적 사유에 대한 욕망의 기저는 그곳에 있다. 세상을 다채롭게 바라보는 것. 한 개인의 사고의 영역은 언어에 한정되지만, 사고의 질은 철학을 통해 충분히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철학서들을 탐독하다 보면 언어의 습득은 물론 가용 범위가 상당히 넓어진다. 그렇게 사고의 질과 영역 모두 현재의 한계점을 돌파하게 된다.





나는 내 한계점을 돌파하고 싶다. 그렇게 내 한계를 넓히고 싶다. 지금보다 더 넓어진 한계에 맞닥뜨리고, 그 한계점을 또 돌파하고 싶다. 그렇게 끝도 모를 우주와 같은 한계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나한테 한계란 무한한 유한이다, 끝없기 격파당하며 파이를 키워나가는.





나의 무한한 유한에는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철학의 시대는 가버렸지만, 내 우주에는 철학의 시대가 도래할 시점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제 시작이 아닐까? 또 다른 한계를 박살내기 시작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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