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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pr 25. 2017

하루 첫 음악, 모닝 알람

 좋아하는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알람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알람"의 속성보다는 "음악"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친구는 좋아하는 음악을 모닝 알람으로 지정한다고 했다. 일어나자 마자, 혹은 일어나기도 전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좋아하는 노래여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는, 그렇게 좋아하기 때문에 정한 노래가 아침 잠을 깨우는 짜증나는 존재가 되어 버려서, 결국은 듣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지고, 끝내는 그 곡을 싫어하게 된다고 했다. 참 사람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이제는 플레이리스트에서 탈락시킨 곡들이 꽤 많으니까.


 정말로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인셉션에는 "킥"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꿈 속에 있는 사람에게 깨어날 순간을 알려주는 장치. 꿈 속의 꿈 속의 꿈이라는 아주 깊은 곳에서, 꿈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이제는 꿈에서 빠져나갈 때임을 알고 등장인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 "킥"의 음악으로 사용된 것이,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다.

E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

 후회 따윈 없으며, 모든 것을 비우고 시작하겠다는 이 곡의 가사는, 사랑하는 맬을 잃고, 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코브의 모습과 꽤 닮아 있다. 게다가 꽤 재미있게도, 인셉션에서 맬 역을 맡은 마리옹 코티아르는 이 곡을 부른 에디트 피아프의 전기 영화 "라비앙 로즈"에서 에디트 피아프 역을 맡은 전력이 있다. 인셉션에 푹 빠져버린 나는, 이 곡을 기상 알람 노래로 정했고, 이따금 꿈의 끄트머리에서 이 곡이 울려퍼지고 잠에서 깨는, "인셉션적"인 경험을 몇 번 하기도 했다.


 곡의 제목이나 가사에 의미를 부여하는것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제목에 Wake Up이 들어있는 곡을 모닝 알람으로 지정한 적이 몇 번 있다. Maroon 5의 Wake up call, 그리고 Avicii의 Wake me up이 한때 나의 잠을 깨우는 노래들이었던 이유이다.

Maroon 5 - Wake Up Call
Avicii - Wake Me Up

 위의 에디트 피아프의 곡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날카로운 사운드 덕에 훨씬 모닝 알람에 어울리는 곡들이다. 잔잔한 곡들을 모닝 알람으로 쓸 때면 정말로 못 듣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렇게 자극적인 곡들을 정해 놓으니, 누가 자는 얼굴에 찬물을 확 뿌린 것처럼 얼얼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Lucia(심규선) - 녹여줘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 곡을 모닝 알람으로 정한 적도 있다. 루시아의 녹여줘가 바로 그 곡이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가 텅 비고, 공허한 냉기로 얼어붙은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돌아와서 내 마음을 녹여달라고 하는 곡. 새벽녘 침대 위에 홀로 앉아 있는 루시아의 모습이 곡의 가사와 잘 어울린다. 이른 아침 일어났을 때, 찬 공기에 바스락거리는 이불의 겉 촉감을 좋아하는데, 이 뮤직비디오를 볼 때면 그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위의 곡들 외에도 자잘한 몇 개의 곡들이 나의 모닝 알람을 거쳐갔다. 그리고 이 곡들은 하나같이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곡을 들었을때 미세하게 각성 상태가 되는 내 마음이나, 아침에 일어나야 할 때 느끼는 짜증, 그런 비슷한 감정을 이 곡들을 들을 때 느끼게 되고, 인트로만 들어도 마치 모닝 알람을 신경질적으로 끌 때 처럼 곡을 휙 넘기게 되고 말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름 좋아하는 곡이니까 하루의 중요한 순간에 울려 퍼지게 만든 것인데, 그 곡을 듣지 않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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