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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pr 28. 2017

손목 위의 자리싸움

째깍거리는 시계와 스마트한 전자 비서의 대결

 중학교에 다닐 때는 슬라이드폰이니 고아라폰이니 하는 핸드폰이 쏟아져 나오더니 고등학교 때에는 아이폰이 나오며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그렇게 핸드폰의 형태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통용되는 농담 중 하나가 "내 핸드폰은 시계야."라는 것이다. 연락이 올 데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을 가지고 그저 시간을 보는 것이 전부라는 자조적인 농담이다. 그 농담에서 알 수 있듯 시간을 보는 것은 핸드폰의 기본 기능 중 하나이고, 그 때문에 핸드폰이 일상화된 내 세대에는 시계를 차고 다니는 애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난 그런 시기에 시계를 차고 다녔고, 그때부터 버릇을 들인 때문인지 아직도 시계를 차고 다닌다. 중학교 3학년인지 고등학교 1학년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10년은 넘는 시간 동안 시계를 차고 다녔다. 꽤 오래된 셈이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내 손목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부모님께 생일선물로 받은 10만 원짜리 포체 시계이다. 알이 엄청나게 큰 은색의 메탈릭 재질의 시계. 어느 옷에든 무난하게 잘 어울려서 항상 차고 다닐 수 있었다. 처음 선물 받은 이후로는, 군대에 있었던 1년 9개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차고 다녔다. 왜 시계를 차고 다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팔이 허전해서, 이따금 시계를 차지 않고 집을 나섰을 때, 시계를 보려고 본 왼쪽 손목에 아무것도 없으면 허전해서,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굳이 핸드폰으로도 시간을 볼 수 있지만, 시계를 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 버려서 시계를 항상 차고 다녀야 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문득, 그렇게 몸의 일부처럼 가지고 다니는 시계가 더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침 친구가 샤오미의 스마트 밴드인 미 피트 2를 싸게 내놓으려고 했다. 잘 맞아떨어지는 상황. 나는 그렇게 10년을 찬 은색 메탈릭 재질의 시계를 창틀 위에 올려두고, 미 피트 2를 왼쪽 손목에 찼다. 쓸 만하면 더 좋은 스마트워치를 사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샤오미 미 밴드 2. 시계 기능 이외에, 심박수 측정 기능, 걸음 수 측정, 오래 앉으면 진동을 울려 일어나라는 알림을 주기도 하고, 자는 동안 깊은 잠을 자는지 얕은 잠을 자는지 수면 분석까지, 단출한 외관과 저렴한 가격에는 과분할 정도로 이 스마트 밴드는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수시로 부웅부웅 진동해대는 이 친구 덕에, 나는 예전에는 놓치던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의 알림을 놓치지 않게 되었고, 한 시간 이상 앉아있으면 울리는 진동에 괜히 일어나서 산책도 하게 되었고,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오는 전화 등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 생각보다 다재다능한 친구가 손목에 올라앉아 있는 덕에, 삶이 꽤 윤택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미 밴드 2를 쓴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다시 예전의 시계로 돌아가기로 했다. 앞에서 좋은 점을 나열한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는 꽤 뜬금없는 결말인 셈이다.


 단순히 시침, 분침, 초침만 움직이는 시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기능을 가진 스마트 워치가 손목에 얹혀 있다는 것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카카오톡이 울릴 때, 인스타그램에 댓글이 달릴 때, 브런치에 댓글이 달릴 때, 미 밴드 2의 액정에는 각각 다른 아이콘과 함께 진동이 울려서 핸드폰을 보고 있지 않아도 무슨 알람이 왔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삶이 지나치게 타이트해지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해, 옛날에는 할 일을 하고 몰아서 보는 식으로 삶의 한 격리된 부분이었던 스마트폰 확인이, 스마트 워치 때문에 내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버렸고, 그리고 그렇게 스며든 푸시 알람들은 수시로 내 삶을 건드려서 나를 쉴 틈 없이 바쁘게 했다.

 항상 켜져 있지 않은 액정도 한몫했다. 손목을 들어 시계 보는 시늉을 하면 화면이 자동으로 켜지는 기능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잘 작동하지는 않았다. 시간을 보고 싶을 때마다 화면 밑의 버튼을 가볍게 터치해야 했는데, 미 밴드를 쓸 때는 별 생각이 없던 이 제스처가 다시 손목시계로 돌아갔을 때는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한 번의 터치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동작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수시로 충전을 해 줘야 하는 점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의 손목시계는 잊을만하면 약을 바꿔주는 정도면 되는데, 이 스마트워치라는 친구는 적어도 5일에 한 번 정도는 충전을 해 주어야 했다. 충전을 해 줘야 한다는 이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 물건이 내가 차고 다니는 시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다. 스마트워치라는 물건이 시계가 아니라, 시계 모양을 한 전자장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전자제품은 이미 주머니 속의 핸드폰과 가방 속의 노트북이 있었고, 거기서 한 개를 더 지니고 다니게 되면 전자제품 과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마트 워치에 대한 거부감이 더해졌다.

 그리고 디자인. 시계를 차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예쁘기 때문인데, 미 피트 2는 내가 기존에 차고 다니던 시계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디자인이었다. 물론 더 예쁜 스마트 워치도 많이 나와있긴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다니는 시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바빴던 나의 왼쪽 손목은, 이제는 1초에 한 번씩 꾸준히 째깍거릴 뿐인 은색 손목시계가 자리 잡았다. 예전의 수다스럽던 전자 비서에 비하면 이 손목시계는 아주 심심한 친구여서, 일상이 예전보다 꽤 조용해졌다. 덕분에 스마트폰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놓게 되면, 물밀듯 밀려들어오는 알림들로부터 내 삶을 지켜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단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가 다시 갖게 되니 생각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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