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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pr 28. 2017

침대병

내 인생을 야금야금 서리하는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내 자취방의 침대는 수퍼 싱글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상대방이 "어머, 외롭겠네."하는 말을 했던 것이 문득 기억이 난다. 나의 수퍼 싱글 침대. 내 방의 단일 품목 중 가장 비싼 물건일 것이다. 처음 자취방을 구하고 계약을 했을 때, 서울에 올라오신 부모님께서 방에는 가구가 있어야 한다며 사 주신 침대이다. 그 당시 내가 사고 싶었던 침대는 싸디싼 이케아의 서랍장이 있는 싱글 침대였는데, 부모님께서는 침대같은 가구는 비싼 걸 써야 한다며 엄청나게 제대로 된 것을 내 방에 놓아주고 가셨다.

 많은 친구들의 자취방을 다녀 봤지만, 내 침대만큼 푹신하고 큼지막한 것은 본 적이 없다.  내 방 침대에 누우면, 마치 푸딩 속에 퐁당 빠진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런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래서 좋은 침대를 써야 한다고 하셨던 걸까. 그렇게 편안한 침대에, 어딘가에 등을 대면 30초 안에 잠드는 놀라운 초능력이 더해져, 거의 침대와 합체하는 동시에 잠에 빠져들게 된다. 그것이 문제다.

  이 사진은 브런치의 다른 글에서 썼던 사진이다. 굳이 사진을 재탕한 이유는, 침대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거의 없기 때문이고, 왜 그런 사진이 거의 없냐면 그래도 사진을 찍으려면 정리를 한 상태에서 찍어야 하는데, 내가 침대 위의 물건들을 치우는 순간은 자는 순간 뿐이고, 침대를 정리하면 괜히 눕게 되서 잠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위의 사진도 새 침대커버를 샀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정말 특별한 경우인 셈이다. 무슨 장황한 이야기를 이렇게 몇 줄 씩이나 늘어놓나 싶을 지도 모르기에 덧붙이자면, 그만큼 정리된 침대는 자연스럽게 등을 대기 마련이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게 하는 무서운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저녁 7시 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한다. 따끈한 식사 후에는 노곤함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설거지도 하고, 커피도 하나 내 오며 남은 저녁시간을 어떻게 윤택하게 쓸지 고민해 본다. 기타를 칠까, 노래를 녹음할까, 아니면 브런치에 글을 쓸까, 오늘 수업한 것을 복습할까, 그것도 아니면 게임이나 할까.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머리 사이로 노곤함이 훅 덮쳐오는 때가 있다. 아무래도 조금 피곤하니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두시간 뒤 쯤의 애매한 시공간에 던져지게 되고, 10시쯤에 잠에서 깬 찌뿌드드한 기분에, 애매하게 자 버려서 뒤로는 잠이 안 오는 그런 상황에 놓여버린다.

 아침운동을 하려고 맞춰놓은 6시 20분 알람이 울릴 때, 모닝 알람으로 지정해놓은 캘빈 해리스의 Slide가 들릴 때, 정신이 깨어난다. 창문을 힐끗 보니 맑은 날씨.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침대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등은 푸딩처럼 푹신한 매트리스, 배는 따뜻하면서도 까끌까끌한 새벽 이불. 완벽한 틈새에 낀 나는 그렇게 30분을 밍기적거리거나 다시 잠에 빠져들어 한 시간 뒤의 아침에 깨어나고 만다. 운동 한두개쯤은 생략하게 되고, 아침부터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내 침대 병은 심각한 중증이다. 침대를 돌침대로 바꾸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려나. 하지만 편하게 자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나 좋은 음악을 듣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낙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을 다 끝마치고 잘 셈인데, 침대가 아까부터 나를 부르고 있다. 이 쯤에서 이 글을 끝마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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