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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May 05. 2017

어딘가 모자란 우주의 수호자들

그 모자란 수호자들에게 사로잡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는 인연이 없었다. 이유는 맥빠지게도 군대에 있던 시절에 나온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나온 영화들은 전부 구멍이 난 것처럼 내 머릿속에 없는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역시 그런 영화중의 하나이다. 사회에 있었다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한 축이니까 당연히 봤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닐지도. 왜냐하면, 다른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히어로들이 어벤저스를 통해 하나로 묶여 있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이건 또 뭐야.'하는 생각에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포스터를 보면 나오는 주인공들은 별로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나무 인간에, 총을 든 너구리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보는 이유는 멋진 영웅들을 보기 위해서인데, 포스터의 영웅들은 별로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역한 뒤에도 딱히 찾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인연이 없는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참 별 것이 없었다. 2편이 개봉하고, 그것을 보러 가자는 약속을 잡게 되었는데, 1편을 안 본 상태에서 2편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많을 것 같아 찾아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개봉할 어벤저스 3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겸사겸사 보게 되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 닥터 스트레인지, 앤트맨 등. 하나같이 유서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을 마블은 훌륭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재해석 과정 속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영웅적인 면모 뒤에 인간적인 면을 가지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혼자 남겨졌을때에 소외감을 느끼거나, 친구나 사랑을 위해 무모한 일에 뛰어들거나. 사악한 악당, 혹은 우주적 존재를 거뜬히 이겨내는 영웅들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면모에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적인 고뇌를 할 줄 아는 모습에서 일종의 반전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반전 매력. 그 단어는,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슈퍼히어로들의 본질을 잘 드러내준다. 어쨌든 토니 스타크는 지구에서 제일가는 갑부이고 천재 엔지니어이다. 스티브 로저스의 강화 신체는 달리는 차도 따라잡을 정도로 초인적인 힘을 보여준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천재 외과의사였고, 손을 다친 뒤에는 최강의 마법사인 소서러 수프림의 경지에 다다른다. 토르는 심지어 신이다.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와는 달리, 그들은 어쨌든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이다. 보통 사람과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쨌든 그들은 수퍼히어로니까, 그런 생각에 공감이 옅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이유이다.


가모라, 피터 퀼, 로켓, 드랙스, 그루트

 반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들은 진짜배기 아웃사이더들이다. 가모라는 우주적 존재인 타노스의 수양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조금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가족을 모두 잃은 복수 하나만을 위해 자기 편 하나 없이 하루하루 살아갔다는 점에서 순탄한 삶은 아니다. 피터 퀼은 어렸을 때 어머니의 임종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 날 우주로 납치를 당한 신세에, 스타로드라는 별명에는 모두가 코웃음을 친다. 로켓은 마냥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생체실험의 결과물이다. "날 수없이 분해하고 이어 붙이더니 이렇게 만들었다.", "모두가 날 쓰레기에 설치류라고 부른다." 는 만취한 상태에서 내뱉은 대사들로 보았을 때, 평소의 시니컬하면서 코믹한 모습과는 달리 트라우마가 많은 캐릭터이다. 로난에게 가족을 모두 잃고, 복수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드랙스. 성격도 다혈질인 까닭에 주변에 친구라 할 만한 것도 없고, 극 중 결정적인 실수 역시 저지른다. 그루트는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나는 그루트다." 밖에 말하지 못하는 나무 인간은 "멋진" 캐릭터와는 거리가 꽤 있다.

 오브를 팔아넘기기 위해 들른 "노웨어"에서, 술을 먹은 일행은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된다. 이때 피터 퀼은 "이러니까 너희가 친구가 없는거야. 5초만 지나면 서로 죽이려고 들잖아."라는 말을 한다. 하나같이 독특한 성격들, 그 때문에 하나같이 외로운 사람들.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라는 이름의 유래는 그 어감과는 달리 멋지지만은 않다. 최종보스인 로난이 등장인물들을 모두 제압한 뒤, "이 우주의 수호자들의 꼴 좀 봐라."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린 것이 명칭의 유래이기 때문이다. 어벤저스에서 빚어졌던 인물들 간의 갈등, 그리고 슈퍼히어로들의 흠은 귀여운 수준으로 보일 정도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들은 결함 투성이이고, 영웅이라기에는 어딘가 많이 모자라다.

 그렇게 결함 투성이인 아웃사이더들이, 극이 전개됨에 따라 서로 신뢰를 쌓고,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깊은 동료애를 가지게 되고, 심지어 행성 하나를 손을 대는 것 만으로 수 초만에 날려버릴 인피니티 스톤의 힘을 가지게 된 로난을 물리치는 - 그래서 개연성에는 높은 점수를 부여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 장면은, 참으로 벅차오르는 부분이 있었고, 보는 이를 눈물겹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아이언맨이 수많은 악당들을 물리칠때는 그렇게 간절하게 응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아이언맨은 강하고, 악당을 당연히 물리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볼 때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간절했던 것 같다. 하지만 캡틴은 선역의 결정판이고, 완전무결한 주인공 그 자체였고,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들은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하고 있었기에, 악당을 물리치는 자체에 무게를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앤트맨은 극중의 악당인 옐로재킷과 힘의 균형이 그렇게 크게 차이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사기적인 능력에 꾀를 더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손에 땀을 쥐는 그런 결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 때, 로켓이 우주선을 뚫고 로난을 들이받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스타로드가 로난의 해머를 박살냈을 때는 감탄을 내질렀으며, 인피니티 스톤으로 로난을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그 어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보다도, 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마지막 장면은 내게 쾌감을 느끼게 했다.


내일은 가오갤 2를 보러 간다.

 단순히 내일 볼 영화가 재미있기를 위해 찾아 본 영화가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프랜차이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가 되었다. 물론 이게 자연스러운, 그리고 일시적인 흐름일 수 있다. 아이언맨을 처음 보았을 때는 토니 스타크를 좋아하다가, 윈터 솔저를 보고 나서는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저를, 에이지 오브 울트론, 시빌 워를 보고 나서 각각 다른 캐릭터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느꼈듯,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보고 난 직후이기 때문에 거기 나온 캐릭터들에게 푹 빠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멤버들은 다른 마블의 슈퍼히어로들과는 다른 점이 꽤 많다. 상처 투성이의 과거,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에, 별로 멋지지 않은 외관까지. 하지만, 그렇게 어딘가 모자란 우주의 수호자들의 영웅적인 스토리가, 멋진 영웅들의 이야기보다 더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보고 느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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