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의 조각들

by 이이육

요즘은 예전만큼 감정의 기울기가 심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급한 감정의 기울기를 가진 행동이라 하면 가령, 나를 향한 공격적인 말을 수십번이고 되새김질하거나, 슬픈 영화나 음악을 들었을 때 그 기분이 한없이 남아있거나, 좋아하는 누군가를 계속 곱씹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있다. 예전에는 확실히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부턴가는 아니게 되었지만.

아주 어린 시절에 책에서 읽었던 교훈적인 글이 문득 생각난다. 양심이 무뎌지는 과정에 대한 글. 마음 속에는 작은 삼각형이 있는데,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삼각형이 빙글빙글 돌면서 마음을 찌르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라고. 하지만,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계속하게 되면, 삼각형이 닳아 버려서 아픔을 덜 느끼게 되고, 나중에는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게 된다고. 그 이야기가 정말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추상적인 것을 꽤 자극적으로 형상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무뎌지는 삼각형보다, 그것이 마음 속을 헤집을 때 뜯겨져 나가는 살점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닳아지는 것은 삼각형이 아니라, 살점이 다 뜯겨져 나가서 이제는 삼각형이 닿지 않을 정도로 텅 비어버린 마음은 아닐까, 그런 생각.


KakaoTalk_Photo_2017-05-07-21-43-55.jpeg


"내려놓으면 편해."


누군가 예전보다 성격이 많이 유해진 것 같다는 말을 건네오면, 그때마다 나는 꽤나 상투적인, 장난 섞인 대답을 내놓는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자니 너무 두서가 없는 것 같아 흔히들 하는 대답으로 상황을 무마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저 아무 생각 없는 대답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상처입은 마음은, 칼에 베인 것처럼 상처를 입게 되고, 피를 뚝뚝 흘리고, 심할 때는 조각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 나는 그렇게 다시는 붙지 않을 마음의 조각을 들고 한참을 서 있다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것들을 계속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각들을 내려놓고 나를 상처입힌 그 자리를 떠난다. 그렇게 내가 버리고 떠나온 마음의 조각들은 어느 역의 플랫폼에, 어느 비 오는 쓸쓸한 거리에, 어느 학교의 호수 옆 벤치에, 그렇게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받을 때마다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는 동안, 내 마음은 자꾸만 작아지게 되고, 상처입을 만한 부위가 다 떨어져 나가버린 마음으로는 이제는 격렬한 감정의 기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어, 과거의 기억이 있는 장소에 갔을 때 그 때의 기억이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이유는 내가 상처받을 때마다 떨어뜨리고 온 마음의 조각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마음의 조각에서 새어 나오는 그때의 분위기, 감정, 그런 것들이 내게 닿아, 그 당시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이따금 그런 감정들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마음의 조각들을 떨어뜨렸던 곳에 가서 가만히 앉아있곤 한다. 스믈스믈 올라오는 그때의 마음을 다시 느끼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