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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브런치 무비패스 #1 "우리의 20세기"

by 이이육

위의 포스터에는 영화의 중심 인물 다섯이 모두 나와 있다. 가운데 중년의 여성은 도로시아이다. 뒤늦게 아이를 갖게 되었고, 남편마저 떠나 버렸지만, 씩씩하게 가정을 꾸려 나가는 사람이다. 시크하게 담배를 뻑뻑 펴 대거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쿨한 태도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도로시아가 과거의 고전적인 여성상과는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도로시아 오른쪽에 서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은 에미. 도로시아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다. 한때 예술을 전공했고, 밤문화를 실컷 즐기는 삶을 살았지만,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학교와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왔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하드코어 페미니스트 - 극중의 표현을 빌린 것이다 - 기도 하다.

도로시아 왼편은 줄리. 도로시아의 아들인 제이미의 짝사랑 상대이지만, 진도를 더 빼고 싶은 제이미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여자아이다. 상담치료사인 어머니의 훈육에 대한 반발심으로 또래 아이들과 거리낌없이 잠자리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 허무감, 걱정 등은 정작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제이미의 방에, 한밤중에 기어올라와서 - 단어 그대로 기어올라온다 - 옆에 누워 털어놓는다.

맨 왼쪽의 남자는 윌리엄. 도로시아가 살고 있는 저택의 복구를 도와주면서 도로시아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다. 과거 히피 공동체에 들어가 생활한 경력이 있어서, 분위기가 그런 사람들과 유사한 경향이 있다. 겉으로 보았을때는 사람보다는 기계, 목재, 그릇 등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런 점 때문인지, 중심 인물 중 유일하게 성인 남성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도 하지만, 정작 도로시아의 아들인 제이미의 훈육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언급된다. "그 사람은 나무에만 관심이 쏠려있잖아. 라던지...

맨 오른쪽의 남자아이는 도로시아의 아들 제이미. 아버지가 없는 늦둥이로 태어나, 다소 자유분방한 도로시아의 훈육 아래 성장한다. 그러나 "기절 놀이"를 하다가 30분간 깨어나지 못하게 되고, 그 사건은 도로시아로 하여금 자신이 제이미의 훈육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래서 도로시아는 에미와 줄리에게, 자신은 아들을 이해할 수 없고 아들도 자신 세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아들의 훈육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이것이 극의 본격적인 시작이기도 하다.


이 극은 처음에 말했듯 어머니인 도로시아가 아들인 제이미를 이해하지 못해, 하숙생인 에미와 또래 친구인 줄리, 두 여성에게 도움을 청하는데서 시작된다. 도로시아는 극이 전개되는 동안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이는데, 세대 간의 갈등에, 격변하는 시대의 이해까지 얹혀져서 배로 어려웠을 도로시아의 제이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제이미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이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에미와 줄리는 제이미의 훈육(?)에 동참하고, 제이미가 영향을 받는 대상은 또래 집단 외에 두 가지 선택지를 더 가지게 되는데, 극중 제이미는 에미에게 영향을 더 받게 된다. 여기서 에미와 도로시아의 갈등이 촉발된다. "그런 하드코어 페미니즘은 내 아들에게 필요하지 않아.", "내 몸은 내가 잘 안단다. 굳이 책을 보지 않아도." 같은 말을 통해 에미가 가진 사상에 대해 도로시아가 크게 동감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미 역시 도로시아보다는 제이미와 같은 시대의 사람인 것이고, 결국 도로시아와 갈등을 빚게 되고 마는 것이다. 윌리엄과 줄리 역시 중심 인물들과 엮이며 여러 가지 갈등을 빚어낸다. 이렇게 인물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그리고 특히 중심 인물인 도로시아가 주변 인물들에게 "왜?" 류의 질문을 많이 던진다. 20세기 초반의 사람인 도로시아가, 1970년대를 그려가고 있는 제이미, 에미, 줄리, 그리고 윌리엄에게 끝없이 의문을 표하는 장면이 꽤 많은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20세기 초반의 사람이 20세기 후반의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의문들을 표하며, 1970년대의 미국이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그것은 역시 1970년대 미국을 살지 않은 우리 눈 앞에도 그대로 펼쳐진다. 그리고 우리는 20세기 후반 미국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도로시아와 같은 입장으로 극이 담아낸 인물들을, 시대를 보게 된다.

이 영화의 중심 키워드는 "20세기 미국"이다. 역사를, 그리고 미국 문화를 아는 사람들을 노린 듯한 장면 - 마치 어르신들께서 국제시장 같은 시대극을 보며 느끼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장면 - 이 많았다. "닉슨이 대통령이 되었다." 라거나, 지미 카터의 상징적인 연설 장면이나. 그리고 상징적인 문화들도 등장했다. 펑크 씬, 마약, 페미니즘 등. 영화는 20세기 미국이라는 시대를 담아내기 위해 꽤 공을 들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20세기 미국을 그려내기 위해 몇 명의 인물을 설정하고, 그들이 갈등을 빚어내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격변하는, 그리고 자유로운 20세기 미국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그렇게 20세기 미국을 보여주는 모든 과정을 요약하면, "다름을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 이라는 문장이 적절할 것 같다 . 20세기 초반의 도로시아가 20세기 후반의 미국을 보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도 그러했고, 제이미를 둘러싼 등장 인물들 간에 서로를 이해해가는 내용도 그러했고, 20세기의 미국 사회를 담은 영화를 보며 그것을 이해하려 하는 우리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는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의 입장에서, 시대적인 배경들 중 어떻게 저런게 가능하지? 하는 장면들이 몇 있었다. 집 안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장면이나, 출산 촉진제로 처방해준 약이 태어날 아이에게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약인데 그것이 버젓이 대중에게 유통이 되었다는 점이나, 임신테스트기의 결과가 나오는데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리거나. 그런 시대가 있었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몇 가지 요소를 굳이 꼽지 않아도, 극의 전반적인 세계는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것들이었는데, 우리의 20세기라는 러닝타임 두 시간짜리 영화를 통해, 나는 그 사회상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시대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은 하게 된 것 같다. 극 중의 도로시아도 아마 20세기 후반의 미국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그저 내 정도로, 그냥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았을까, 그것이 도로시아의 나레이션을 통해 20세기의 미국을 들여다본 나의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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