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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그날의 광주를 보여주었다

영화 “택시운전사” 후기

by 이이육

영화 “택시운전사”는 주인공 김만섭, 그리고 그의 택시를 타고 광주를 취재하러 가는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캐릭터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택시기사 김만섭 쪽이다. 아무래도 위르겐 힌츠페터는 실존 인물이기도 하고, 정말로 감사한 인물이기에 함부로 누가 되는 설정을 넣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캐릭터가 밋밋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이다. 김만섭은 분명히 역사에 존재하는 사람을 베이스로 한 인물이지만, 현재는 행방이 묘연하기 때문에 100% 상상에 의존해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이런 저런 설정을 넣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웠을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에 의해 창조된 서울에 사는 택시 운전사 김만섭. 그의 택시는 60만km를 주행했다. 백미러가 떨어져서 찾아간 카센터에서, 깎을 구석이 없는 수리비를 역정을 내서 깎는다. 차를 몰지 않을때는 방수포 같은 천으로 택시를 덮어둔다. 생채기가 나면 수리비가 깨진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은 셋방, 부인은 없고, 외동딸 하나를 홀로 키우고 있다. 평범한 가정마저 갖지 못한 팍팍한 삶이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 수출이 막히면 무역 손해가 생기는데 그게 우리나라에 얼마나 큰 손해인지 아느냐, 그런 말을 하는 애국자이다. 데모를 하는 학생들에게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교에 와서 공부를 해야지, 데모하러 학교에 왔냐고 일갈하기까지 한다. 젊은 나이에 사우디에 다녀온 산업 역군으로서 대한민국의 경이로운 경제 성장의 순간에 함께했기에, 애국심이 넘쳐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애국심 넘치는 서울의 소시민 택시기사는 독일 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를 택시에 태우고 계엄군이 둘러싼 광주로 향한다. 주인공들을 광주 외부의 인물들로 설정한 것은,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로 하여금 기존의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보다 더 높은 차원의 객관성을 확보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외부인인 김만섭과 위르겐 힌츠페터의 시선을 따라감에 따라, 영화는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논조로 전개되어,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관객이 그 당시 광주에 있지 않았고, 또 대부분 광주 사람도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광주의 이야기를 광주 시민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다룬 것은, 관객들이 더 영화에 공감할 수 있게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극 막바지의 카체이스 씬에 대한 혹평이 왕왕 보인다. 개연성을 따지면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맞다. 하지만, 나쁜 장면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득 영화 덩케르크가 떠올랐다. 100분 간의 러닝타임 중, 감독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영화 스스로가 자신의 장르를 과시했던 후반 10분간의 극적인 장면들. 연료가 떨어진 스핏파이어가 공중에 체공하는 채로 독일 폭격기를 격추하고, 랜딩 기어를 억지로 펴서 무사히 착륙하는 씬. 목숨을 위협하는 총탄, 폭격, 어뢰를 두려워하는 군인들의 모습, 화려하지 않은 공중전 등 지독하게 현실적인 장면만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숨을 조여오던 영화가, 앞의 장면들에 비해 매우 극적인 시퀀스를 통해 탄산 음료처럼 관객들에게 쾌감을 선사한 그 순간 말이다. 덩케르크 작전이라는 절망스러운 역사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상황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상징적인 장면으로서, 후반 10분간의 극적인 연출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택시운전사의 카체이스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방금 전만 해도 활기차고, 웃음을 잃지 않고, 화기애애하던 시민들이,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계엄군의 몽둥이에 맞아 뇌수가 흐르고, 무차별 사격에 의해 벌집이 되고, 돼지처럼 발가벗겨지고 포박당한 채 트럭에 채워지고, 실신한 채 다리를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보는 이의 가슴이 찢어지게 만드는 현실적인 장면만을 비추다가, 마지막 순간 지금까지의 현실적인 톤을 버리고 다소 비현실적이고 극적인 장면, 폭력의 압제에 굴복하지 않는 시민들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런 장면을 넣음으로서 관객의 감정을 한껏 더 울렸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제로 518 민주화운동의 순간에 자발적으로 봉사한 택시운전사들에 대한 일종의 헌사라는 생각 또한 든다. 그 카체이스 씬이 빠졌더라면 다큐로서의 완성도는 꽤 많이 올라갔겠지만, 영화의 전체 플롯을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아주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그 씬을 넣기로 한 선택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이 영화에는 두개의 비극이 있다. 군홧발에 짓밟히는 광주 시민의 역사의 비극, 그리고 주인공인 김만섭의 인생 비극.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김만섭”의 비극은 광주 시민들의 비극에 비하면 그 농도가 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김만섭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이 빈약하다거나, 송강호라는 배우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니다. 어떤 슬픈 인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어도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1980년 5월의 비극이 지니고있는 무게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송강호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손꼽힐 만큼 비극적인 순간을 들여다보며 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관객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나 허술하고, 소시민적이며 유쾌한 분위기를 풍기던 김만섭이, 순천의 한 식당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광주 도청 앞에서 먹었던 주먹밥을 떠올리며, 서울로 가는 길의 녹색 신호등 앞에서 오열하며 광주 쪽으로 차를 돌리며, 딸에게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하는 장면은, 영화를 보는 이의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장면이었다.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이 아니었던 관객들, 5.18 민주화운동을 잘 알지 못했던 관객들에게, 소시민적인 애국자 김만섭이 국가의 압제에 눈물흘리며 광주로 돌아간 그 장면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5.18 민주화운동에 더욱 더 깊게 몰입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영화를 보고 생각하니 감독과 배우가 관객의 감정을 주무르는 데 통달했구나, 그리고 나는 완전히 그 페이스에 빠져들고 말았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 중에서는 작품 자체에 집중하느라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는 것을 놓치는 것들이 왕왕 있다. 택시운전사는 그렇지 않았다. 두 주인공, 서울의 택시운전사와 독일인 기자는 5.18 민주화운동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입장, 관객을 그 역사 속으로 데려가주는 안내자 역할이었을 뿐이었다. 진정한 주인공은 1980년 5월의 광주, 그곳에서 희생당한 시민들이었다. 그 점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드는 점이었다.


연일 들려오는 이 영화의 흥행 소식에 기분이 좋다. 적어도 한 번은 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에, 이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좋은 예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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