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노엘 갤러거 밴드 NGHFB 내한 후기
데미안 라이스, 제이슨 므라즈, 에드 시런, 트래비스, 콜드플레이, 오아시스. 분별 없이 음악을 듣게 된 요즘이지만, 예전에 좋아했었던 것 같은 뮤지션들의 이름을 꾸역꾸역 떠올려 적어 보았다. 그 중 데미안 라이스와 제이슨 므라즈, 두 뮤지션은 한때 나의 명백한 워너비였다. 기타 한 대만 가지고 무대에 서서, 자신이 쓴 멋진 곡들을 공연하며 무대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지게 보여서, 그들처럼 음악을 하고, 그들처럼 공연을 하고 싶었다. 비록 둘의 곡을 연주하며 노래하기엔 기타 실력이 부족해서 많은 곡을 커버하지는 못했지만, 내게 두 아티스트는 항상 동경하는 대상이었고 닮고싶은 대상이었다.
오아시스와 콜드플레이, 트래비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서정적인 스타일의 영국 록 음악이 듣기 좋았기 때문이다. 셋 중 가장 많이 듣고 커버를 한 밴드는 단연 오아시스였다. 혼자 연주하기에 코드가 쉬우면서 곡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Stand by me, Live forever, The importance of being idle, Stop crying your heart out,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곡들을 노래하면서 느낀 점은, 노엘 갤러거는 참 단순한 코드로 좋은 곡들을 많이 만들어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평생 한 곡을 쓸까말까 한 대단할 수준의 곡들을 이렇게 많이 써내고는, 이런 곡은 집에 쌓여있다며 자신만만한 노엘 갤러거를, 하지만 데미안 라이스나 제이슨 므라즈만큼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아시스의 음악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 중 절반 이상의 지분은 리암 갤러거의 보컬에 있었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다른 뮤지션의 곡을 커버하곤 하는데, 오아시스만큼은 유독 좋은 커버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리암 갤러거 보컬의 오리지날리티가 주는 전율을 뛰어넘는 재해석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리암 예찬쪽으로 새고 말았는데, 하고자 하는 말은 오아시스의 음악은 노엘 갤러거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고, 노엘 갤러거의 곡을 오아시스라는 밴드가 해석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위에서 말했던 데미안 라이스나 제이슨 므라즈를 좋아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으로 노엘 갤러거를 좋아하지는 않았고, 다만 오아시스를 좋아할 뿐이었다.
노엘 갤러거의 내한 소식을 듣고, 친구와 함께 티켓을 사야겠다 생각하고, 티켓팅을 성공한 그 순간에도, 노엘 갤러거를 보러 가는 이유는 그의 공연이 기대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를 죽기 전에 한번쯤은 봐야할 것 같아서였다. '공연이 좀 지루하면 어떠겠어? 내 10대를 채운 음악을 만든 사람인데. 리암이 아닌 노엘이 부르는 오아시스의 노래들은 그렇게 좋지는 않겠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공연을 예매했다. 의식하지 않고 있던 어느 날, 공연이 성큼 다가왔고, 어느새 공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같이 가는 친구와 했던 많은 말들 중 "그래도 죽기 전에 노엘 갤러거를 보는구나."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다. 내게 이번 공연의 의의를 가장 잘 나타낸 문장 같다. 그래서 자꾸 입 밖으로 꺼낸 것 아닐까.
올림픽공원을 돌아 공연장에 들어서자, 공연장 특유의 따스하고 습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갑자기 확 설레었다. '정말 죽기 전에 노엘 갤러거를 보는구나.'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무대 옆 전광판에는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라는 글씨가 검은 스크린 위에 써져있었고, 하이 플라잉 버즈스러운 음악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쩌렁쩌렁한 하이 플라잉 버즈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약간의 아이러니함이 머리를 스쳤다. Supersonic,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부르는 것을 듣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들을 들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하이 플라잉 버즈의 1집과 2집은 그럭저럭 챙겨 들었기 때문에 들으면 무슨 곡인지 알텐데, 3집은 별로지 싶어서 아예 듣지도 않았기 때문에 잘 알지도 못했다. 모르는 노래인 걸 보니, 지금 공연장을 메우고 있는 노래는 3집이겠거니 했다. 스탠딩 좌석을 메운 관객들은 노엘 갤러거의 팬일까 오아시스의 팬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적어도 좌석보다는 노엘 갤러거의 팬일 확률이 높겠지, 공연 내내 몸을 흔들고 호응을 할 자신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도는 동안, 시간도 같이 흘러갔고, 마침내 노엘 갤러거가 무대 위에 나타났다.
초반 곡들은 공연 시작 전 흘러나오던 음악처럼, 그의 최신 곡들이 나왔다. 밴드 사운드 위에 얹힌 브라스 세션, 그리고 여성 코러스. 옛날 브리티시 록 스러우면서도, 카사비안 같은 느낌도 나면서, 마지막 오아시스 앨범 같은 느낌도 나고,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오아시스 스타일은 아닌 그런 곡들이었다. 내 과거의 영웅이 새롭게 하고 싶은 음악이 이런 것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들었다. 그렇게 30분간 노엘 밴드의 곡들이 이어졌다. 비록 모르는 곡들이었지만, 노엘 갤러거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내 눈 앞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름이 돋기는 했다. 3집 위주의 세트리스트를 연주하며, 노엘은 멘트 한 번 날리지 않았다. 너무 노래만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즈음, 노엘이 마침내 공연에 텀을 두었다.
"내가 그리웠니? 난 너희가 그리웠다."
멘트와 함께, 노엘 갤러거의 Supersonic이 시작되었다. 오아시스의 풀 밴드 버전이 아닌, 건반 세션과 노엘 갤러거의 통기타만으로 이루어진 Supersonic이 시작되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보고자 한 공연이 이제서야 시작한 셈이었다. Whatever, Little by little, Half the world away, Don't look back in anger 등, 오아시스의 곡들이 노엘 갤러거의 손과 입을 통해 공연장에 울러퍼졌다. 오아시스의 버전과는 꽤 달랐지만, 과거에 들었던 곡들이 새 생명을 얻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아시스의 곡은 노엘 갤러거가 쓴 곡에 대한 오아시스의 해석이고, 지금 노엘 갤러거가 하는 것은 자신이 쓴 곡에 대한 자기 스스로의 해석이 아닐까? 그러니까, 사실은 이것이 원작자의 오리지날리티, 본래 의도, 그런 것과 더 가까운 해석이 아닐까? 노엘의 연주와 노래는 군더더기 없이, 하지만 듣는 나를 전율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문득, 노엘 갤러거는 그저 대단한 송라이터일 뿐 아니라, 대단한 싱어송라이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코 그의 기타 퍼포먼스가 화려하거나 신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써낸 수많은 좋은 곡들, 그리고 그 좋은 곡과 혼연일체가 되는 모습이, 과거에 다른 우상들과 그를 분리했던 내 생각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노엘 갤러거 역시 기타 한 대만 가지고도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아티스트구나, 화려한 기교가 없어도, 그가 써낸 멋진 곡들과, 그의 진솔하고도 힘있는 목소리와, 그리고 노엘 갤러거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듣는 이를 감동하게 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공연의 마지막을 알리는 All you need is love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죽기 전에 노엘 갤러거를 봤네."라고, 공연 시작 전에 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말을 읊조렸지만, 의미는 많이 달랐다. 노엘 갤러거에게 예전보다 훨씬 더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데미안 라이스, 제이슨 므라즈와 같은 과거의 우상들의 옆 혹은 위에, 노엘 갤러거의 이름을 두게 되었다. 팔아야 할지 고민했던 에피폰의 ej-200ce는 노엘 갤러거의 깁슨 모델과 모양이 같다는 이유로 팔지 않게 될 것 같다. 돈이 생긴다면 체리색 할로바디 기타를 사려고 할 것 같다. 예전보다 더 오아시스, 그리고 노엘 갤러거의 음악을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고, 한 명만 꼽으라고 하면, 노엘 갤러거를 말해야 할지 꽤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한 번의 공연이 짙은 여운을 내 삶에 집어넣었고, 그것이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