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 시즌 5 감상 후기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편리들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것들일 것이다. 서재 하나를 가득 채울 분량의 텍스트나 이미지, 영상을 지금은 클라우드 서버에 담아 두고,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과거에 비하면 방을 들고 다니는 셈이다. 기계들은 한없이 소형화되는 한편, 사용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한다. 무전기 같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며 편리해하던 시대를 지나,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이 컴퓨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현실과 똑같은 조건의 실험실이 컴퓨터 속에 존재하고, 그 안에서 위험 없이 무궁무진한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수동적으로 데이터를 넣어주는 것이 아닌, 인간처럼 혼자 학습하고 혼자 성장하는 AI마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시대다. 인간은 기술의 발전이라는 큰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과거보다 훨씬 편리하고, 훨씬 안전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그런 낙관적인 전망은 밝은 미래가 거기 있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데려다 줄 미래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기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편리하게 한 기술들이, 오히려 인간을 나태하고 산만하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는 기술이 없을 때보다 능률을 저하시킨 사례는 흔하다. 예측할 수 없이 삶을 뒤흔드는 기술의 발전은 점점 격해지고 있다. 우리 삶은 좀 더 큰 폭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런 기술 발전이 가져다줄 우리 미래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블랙 미러"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새로 나온 블랙 미러 시즌 5의 세 편의 이야기들을 보고, 각각의 감상을 적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에피소드가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불쾌했다. 그만큼 파격적었다는 뜻이고, 블랙 미러 시리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가장 잘 맞는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겨난, 기술이 없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 생각조차 할 수 없을 - 갈등,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선사해주는 불쾌함, 생각의 여지, 그런 것들이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에 담겨 있었다. 문제는 설정에 억지가 많았다는 점이다. "굳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 몇 개 있었고, 인물 간의 대화 속에 왜 "굳이 그래야만 했는가?"를 설명해주지만,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나, 사건의 화두에 있는 인물들이나,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보는 사람 열 받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적어도 에피소드가 담고 있는 이야기만큼은 충분히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흥미진진했다.
"스미더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이다. 에피소드 이야기 대부분의 흐름이 차 안에서의 대화, 혹은 전화를 통한 대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마치 잘 만들어진 모노드라마를 볼 때 같은 쾌감을 느꼈다. 에피소드가 담고 있는 주제는 다소 식상하게 느껴졌다. 시대에 뒤쳐져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에피소드가 담고 있는 주제가 식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즉, 이 에피소드가 담고 있는 주제, 던지고 있는 의문은 이미 현실에 있는 내용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당장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많은 주제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였다.
앞선 에피소드인 "스미더린"을 보며 느낀 것은,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경우는 이야기에 담겨 있는 주제가 파격적이었을 뿐, 전개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는데, "스미더린"의 경우는 전개가 초반에 나온 설정이 아닌, 중간에 튀어나온 설정에 의해 진행되는 감이 있었다.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스미더린"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팍 튀는 경향이 조금 더 컸다. 극의 초반에 나오는 내용들은 중심 사건이나 주제와 큰 상관이 없고, 잔잔한 템포로 흘러가던 이야기가,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의해 템포를 바꾸고, 클라이맥스로 흘러간다. 구성이 단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레이철, 잭, 애슐리 투"의 경우에는 생각할 거리를 여러 모로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큰 중심 사건 하나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 여러 자잘한 사건을 담고 있었고, 그래서 다른 에피소드가 갖지 못한 좋은 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팬들의 평에 의하면 "블랙 미러"의 모든 에피소드 중 가장 밝은 편이었다고 하는데, 전 시즌들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맞을 것 같은 평이었다.
이렇게 "블랙 미러" 시즌 5의 세 에피소드들을 감상하였다. 이름값이 있는 시리즈물 답게, 쟁쟁한 배우들이 매 에피소드에 등장해서 무게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영상 역시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했다. 에피소드들이 담고 있는, 기술 발전에 의해 초래된, 과거에 없었던 불쾌한 상황들을 제시해주는 것이 "블랙 미러"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에피소드 속 겪은 적 없는 가상의 상황들은 마치 곧 마주할 가까운 미래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소재가 설득력 있고 매력적이었다. 시즌 5를 재미있게 다 보았는데, "블랙 미러" 과거 시즌들은 이번 시즌 5에 비해 비교적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니, 이제는 시즌 1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