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구독이 가져다준 좋은 점 중 하나는 부모님과의 대화거리가 하나 늘었다는 것이다. 프리미엄 구독의 빈자리에 부모님을 넣어드리고 나서, 넷플릭스 시청은 부모님의 주된 여가활동이 되었다. 타지 생활을 하며 가끔 전화를 걸면 서로 공허한 안부 더듬기로 대화를 이어 나갈 뿐이었는데, 요새는 본 것 중 무엇이 재밌었는지 추천해드리기도 하고, 겹치는 드라마에 대해서는 서로 감상평 공유도 한다. 그런 바람직한 교류는 넷플릭스 구독을 한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시작됐다. 한참 "블랙 미러" 시리즈를 보고 있었던 내게, "킹덤"을 다 보신 엄마는 엄청 재밌는 드라마를 찾았다며 나중에 꼭 보라고 하셨다. 제목이 뭐냐고 하니 "기묘한 이야기"라고 하셨다. 저도 어차피 나중에 보고 리뷰 써야 해요, 미리 다 보고 감상 말씀해주세요, 스포일러는 하지 마시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며 통화를 끝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마침내 "기묘한 이야기"를 보기 시작했을 때, 2화까지 봤을 때인가, 드는 생각은 "막막함"이었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데다가 사방에는 알 수 없는 점액이 가득하고, 정체불명의 살인 괴물이 사는 평행세계에 어린아이가 끌려간 상황인데, 그 아이를 구하려고 나선 것은 그 아이의 엄마, 형, 단짝 친구 세 명, 다소 허술해 보이는 경찰서장, 불완전한 초능력을 구사하는 소녀뿐인데, 괴물은 한없이 강해 보이고, CIA까지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잘 훈련된 특수부대라도 헤쳐나가기 힘든 상황인데, 대체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분명 엄마가 재밌게 봤다고 하셨는데, "구니스", "인디아나 존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가 어떻게 이렇게 무겁고 막막한 드라마를 재밌게 보신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화씩 볼 때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물을 좋아하는지, 그 유명한 넷플릭스의 간판 시리즈물이 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막막한 상황을 풀어나가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즈의 주연이 납치당한 아이의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특수부대 4인방이 주인공인 시리즈라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더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흔해빠진 냉전시대 SF물이 되지 않았을까?
시즌 1의 첫 화 보드게임 씬부터 등장하는 윌, 마이클, 더스틴, 루카스, 네 명의 아이가 "기묘한 이야기"의 주연이다. 보드 게임을 즐기고, 만화책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딱 그 나이 때 꼬맹이들 같지만, 과학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그걸 바탕으로 평행 세계인 "뒤집힌 곳"의 개념을 "벼룩 이야기"를 통해 바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너무 막막한 상황이지만 친구를 포기하지 않는 점은, 내가 알고 있는 어린아이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거기에 초능력 소녀인 일레븐까지 합세하게 되는데, 주연 5인방이 전부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연히 극의 절반 이상은 아이들의 모험 활극으로 채워지게 된다. 그 덕분에, 아이들의 순진하면서도 당돌한 면을 보느라 막막한 사건에 대한 무게감을 덜고 재밌게 시리즈를 즐길 수 있었다.
"기묘한 이야기"에 담긴 가족의 이야기 역시 시리즈에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다. 납치당한 소년인 윌의 어머니 조이스가 오열하는 모습, 그리고 아들이 죽지 않았다는 믿음을 가지는 모습, 그리고 아들을 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모습 등을 보며, 납치당한 윌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사건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들의 실종으로 힘들어하는, 그리고 힘을 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현실의 가족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것은 개인일 때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해 주는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기묘한 이야기"는 가족 드라마의 면모를 강하게 띠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강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윌의 엄마인 조이스의 모습뿐 아니라, 다소 무심한, 하지만 꽤 현실적인 아빠가 구성원인 마이클 가족의 모습, 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과거의 아빠 경찰서장 짐의 모습, 실험실의 아빠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고 할 수 있는 엘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에 매력이 있어서, 더 즐겁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좋았던 점을 꼽자면, 일단 답답하지 않은 전개가 좋았다. 분량을 위해 질질 끄는 장면이 단언컨대 한 장면도 없었다. 윌의 형인 조나단이 동생의 흔적을 찾아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마이클의 누나인 낸시가 남자 친구 스티브와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포착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여느 드라마라면 깊은 갈등의 요소가 되었겠지만, 실종된 바버라를 찾기 위한 단서, 그리고 양아치 무리와 어울리던 스티브의 성장 및 활약의 바탕이 될 뿐이고, 갈등도 금방 해소된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촉 역시 좋아서, 막다른 길에 가로막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술과 약에 절어있지만, 경찰서장 자리는 거저먹은 것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 듯한 짐의 촉, 그리고 아들을 찾기 위한 간절함이 통했는지, 집에 전구를 설치한다던지, 가짜 시체를 바로 알아본다던지 하는 조이스의 활약,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일레븐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뒤집힌 곳"의 실체를 이해하고,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찾아내고, 감각 차단 탱크를 만든 주인공 아이들의 활약까지, 매 화 시원시원한 전개가 있어서, 답답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또한, 끊는 타이밍이 예술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한 화를 보고 나면 다음 화를 보지 않으면 못 배기게끔 만들어져 있는데, 심지어 시즌 1의 마지막화까지 시즌 2를 보지 않으면 못 배기게 만들어져 있다.
초반 회차에서 느꼈던 막막함, 그로부터 오는 '왜 부모님은 이 시리즈를 재밌게 보신 걸까?' 하는 의문은, 시즌 1을 다 보는 사이 완벽하게 해소되었다. 압도적이고 막막한 위기에 맞서는 아이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 이 시리즈물이 가진 매력은, 모든 연령층에게 고루 어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에만 몰아서 봐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저녁 일과가 넷플릭스 시청으로 가득 찬 부모님은 이미 "기묘한 이야기" 시즌 3까지 정주행을 마치셨다. 부모님과의 대화거리를 늘리기 위해, 그리고 내용이 너무 궁금하기 때문에, 이번 주말에는 시즌 2를 모조리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