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카페에 나와 바다를 보며 멍하니 앉아있다. 바다 위로 해가 흐르는 것이 보인다. 밀물과 썰물 중간에 있는 바다는 뻘을 반쯤 드러낸 채 제자리를 유영하고 있다. 제자리를 걷는 풍경들의 너머에, 시간은 항상 그렇듯 묵묵히 앞으로만 가고 있다. 29의 끝자락임에도 스무 살 때 처럼 여전히 카페에 앉아 노트에 잡념이나 늘어놓는 나처럼, 시간도 변함없이 제 갈 길을 간다. 테라스에 앉은 아저씨들이 골프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골프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 그런 아저씨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지만, 감히 그렇게 되고싶지 않다 말하고 싶다. 나이 들어서도 시덥잖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다. 길을 걸으며 갑자기 떠올랐던 생각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 어제 읽은 책이나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 그리고 주변에는 그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여서, 그런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 동네에 있는 공사 건물을 차로 지나가면서, 항상 아버지는 공사에 다니면 "걱정이 없다", 그러니까 그런 방향으로 취직하는 것도 생각해봐라. 말씀하곤 하셨다. 그 말이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게 싫었다.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진다는 말은 이제 십몇 년 산 어린애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반발심 때문에 그런 안정적인 직업군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런 직업들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엄청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요지는 무심히 건넨 추천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는 것으로 앙갚음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되는 대로 살아오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운이 너무나도 좋은 것이기는 하다. 안정적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까. 걱정이 없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다른 많은 직업군들이 하는 많은 고민들은 하지 않아도 되어서, 아버지 말씀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구나 생각한다. 그렇게 좋은 점이 있는 직업이지만, 그럼에도 꼭 집어서 하고 싶지 않다 생각했던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 우습다. 되는 대로 살다 보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일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적지 않은 골프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들이 있는 이유는 그런 아저씨가 되는 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일까. 관성에 이끌려 골프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가 되지 않으려, 자꾸만 펜을 잡거나 키보드 앞에 앉는다. 하지만 삶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꾸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고, 지속적으로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다시 되는 대로 살게 된다. 원하는 삶의 자취란 쟁취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지난 29년간 살아오며 깨달았으나 여전히 온전히 쟁취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