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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Jan 03. 2021

2020년을 돌아보며

 2020은 시작부터 정신없었다. 사회 초년생이라는 새로운 열차에 환승하는 사건이 있었고, 모두의 삶을 꽤 많이 바꿔버린 코로나의 등장도 있었다. 삶은 이전에 겪은 적 없던 속도로 흘러갔다.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열차 위에서, 과거는 빠르게 내게로부터 멀어져 갔다. 과거에는 숨 쉬듯 가던 장소, 만나던 사람들, 하던 생각들이 있었는데, 많은 부분과 지금은 완전히 멀어지고 말았다. 그것들 중 일부는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지조차 못할 정도로, 내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두고 온 것에 대한 마음이 남기 마련인데, 인생이라는 급행열차는 돌아보고 싶은 추억이나 미련들을 신경 쓸 찰나조차 없게 시간을 정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새로운 직장은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동네를 떠나,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동네에 살게 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에서 어지간한 건 할 수 없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은 나를 다른 시련에 처하게 했다. 비약하자면 하기 싫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으로, 과거와 별 다를 것 없다. 하지만 골자는 꽤 바뀌었다. 예전엔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살아야 했다면, 지금은 만나기 싫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야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새로운 일상은 예전에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했고, 예전에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게 했다.

 나를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과 적당히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지 못하면 사회에서는 살아가기 너무 힘들 테니까.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 남은 몇 안 되는 지상과제였는데 곧잘 하게 되었다. 물론 운전이라는 것은 매 순간이 도전이니까 긴장의 끈을 늦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로라는 불확실한 공간 속을 유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다고 본다. 

 사고 싶은 것은 살 수 있게 되었다. 평소 돈 나갈만한 일을 안 해서일까, 저축을 안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살 수 있는 건 살 수 있게 되었다. 할부라던지 마이너스 통장의 힘을 빌려야 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살 수 있지만 참는 것들로 바뀌었다는 의의는 있다.

 예전처럼 가고 싶은 곳에 쉽게 갈 수 없게 되었다. 삶의 터전이 바뀌어버린 탓도 있지만, 예전에 없었던 바이러스 때문에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겼지만 그에 맞게 여행을 많이 가지는 못했다.

 예전보다 글을 잘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일정 부분은 내 탓인 일인데 자꾸만 다른 핑계를 대게 되는 일이다. 퇴근 후 시간이 없다기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나 집에서 의미 없이 뒹굴거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물론 이따금은 시간을 할애해서 키보드 앞에 앉아 본다. 하지만 예전처럼 일상을 쓰기에는 여러 사람들과 얽혀있는 일이 많아 남들과 나누기가 조심스럽다. 글이 안 쓰이는 것은 그래도 키보드 앞에 앉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늘리면 해결될 일이라 생각한다. 나아져야 하는 부분이다.

 이유 없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월급쟁이들은 돈을 받는 대가로 주중 40시간을 빼앗기는 거라고. 슬프지만 맞는 말 같다. 심지어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때, 회사 컴퓨터 앞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르면, 저 문장이 나를 의기양양하게 내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위의 연장선상으로,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 숨을 곳이 많은 서울에 비해 뭐가 없는 여기의 환경이 일단은 문제다. 선약은 있을 수 없고, 회사 직원들이 모르는 친구 역시 있을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런 상황에선 밥이라도 한 끼 하자는 말에 둘러대기 어렵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와의 약속을 아무 이유 없이, 혼자 있고 싶다는 이유로 피하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앞의 것들의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너무 재밌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잠을 자야 하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 즐겁지만, 자기 계발을 할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지만 시골에 살기에 직격탄은 피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꼭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사람의 맨 얼굴이 이렇게 어색해질 줄은 몰랐다. 재택근무도 경험하게 되었다. 직장이라는 공간은 내 능률이 한계까지 발휘되지 않는 공간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를 구경할 수 없었던 도시라 그런지, 그것으로 인해 변한 일상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 것 같다. 그냥 사람을 만나면 마스크를 쓰는 정도. 애초에 뭐가 없는 도시라서 그런지 코로나로 인해 일상을 제한당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는 공포감도 직접적으로 느끼진 못했다. 이럴 때 새옹지마라는 말을 써야 하나 싶다.

 두서없이 늘어놓은 2020년은 내게는 확실히 좋은 일들이 많았다. 사소하고 많은 나쁜 일들은 크고 중요한 좋은 일들을 무색하게 할 수 없다. 사소한 해프닝에 우울해지는 것은 내 삶을 찾아온 큰 행복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2021년은 2020년보다 조금 더 좋은 일이 많았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본다. 새로운 성취, 새로운 좋은 사람들, 조금 더 단단하고 평온한 육체와 마음, 그런 것들을 성취하기를 바라본다. 그에 더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남들이 알아주는 성취뿐 아니라, 어떤 이는 쓸모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스스로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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