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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Mar 27. 2021

쓰지 않던 사투리를 끄집어내어

살아가기 위해

 상경 전 20년 동안은 지방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완벽한 사투리를 구사했다. 그러나 스무 살 후 서울에서의 십여 년의 삶은 나로 하여금 서울 말씨를 완벽히 탑재하게 하는데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서울말의 풍파는 내 말씨를 바꿨을지언정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사투리의 뿌리를 해치지는 못한 모양이다. 고향 친구들을 만날 때, 친구들과 똑같이 능수능란한 사투리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억지로 끄집어내자면 잘 나오지 않던 사투리는, 같은 말투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제 멋대로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되는 대로 산 것치곤 괜찮은 직장에 들어왔지만, 근무지는 인생의 결을 따라 인기 없는 지역으로, 되는 대로 배정받고 말았다. 서울이며 경기며 인천이 고향인 동기들이 집과 멀어 가기 싫어하는 인기 없는 지역은 다름 아닌 내 고향이 있는 지역이었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고향 땅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다만 연어는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지만 나는 계속 살아가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20년을 살아온 고향 지역에서도 꽤 시골인 곳으로 배정받게 되었다.

 시골 동네에서 사무직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의 민원인들은 차분하지만 조곤조곤 지침을 파고든다면, 여기 시골 민원인들은 꽤나 열정적이다. 종종 있는 억세고 막무가내인 민원인들에게 기가 눌리지 않게 애써야 한다. 수도권 출신 입사 동기들은 연고가 전혀 없는 이 곳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로서는 어릴 적부터 지내온 고향, 그리고 명절이면 찾아가던 시골의 정취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것이 여기 근무지이기 때문에, 동기들보다는 적응이 수월하다.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낯선 환경은 서울 경기 출신들에게는 꽤 버거울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선 환경을 더욱 어렵게 하는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사투리다. 전화 응대는 사무직의 기본이다. 전화벨 소리와 함께 일이 찾아오고, 전화번호를 누르는 다이얼과 함께 일을 찾아간다. 하지만 도시에서만 살다 온 사람들은 사투리의, 기본적으로 통화를 하면 사투리를 쓰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간신히 뭔가를 알아듣고 상대에게 말을 건네지만, 동기들의 서울말을 상대방 역시 알아듣지 못한다고 한다. 말이 통해도 말이 안 통하는 것이 민원인인데,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아 버리니, 상대가 가진 화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만다는 것이다.

 나 역시 입을 열었을 때 10년간 쓴 서울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하지만 단정하고 정제된 말투로는 거센 민원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괜히 들어, 거센 민원 전화를 받을 때면 호흡을 가다듬고 10년간 쓰지 않았던 사투리를 끄집어낸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내 괜히 말투가 드세지는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이 내 말을 조금 더 잘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고, 맞불을 놔야 할 것 같을 때 확실히 맞불이 놔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모로 민원을 상대하기는 사투리를 끄집어내는 것이 더 수월한 것 같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내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같은 처지인 다른 사람들보다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나의 모습을,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에 억지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어쨌든, 나는 살아남으려고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여기 왔다. 거슬러 온 이 곳에서 살아가기 수월하게 바뀌는 것은 꽤나 논리적인 수순이다. 내일도 나는 쉽지 않은 민원인의 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어 사투리를 끄집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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