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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ug 13. 2016

휴식하는 그 순간을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브로콜리 너마저 - 유자차

 군대를 입대하기 전 6개월 정도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동안 큰 고비였던 시간 중 하나였다. 군입대의 압박감 뿐  아니라 온갖 악재가 겹치던 시기였다. 몸과 마음이 지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기에, 게임과 음악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 끝에 군입대는 찾아왔고, 사회를 잠시 떠나게 되었다. 지루한 군생활은 정적인 삶을 추구하던 나에게 자극적인 무언가를 갈망하게 했다. 전역을 목전에 두었을 때, 무의미하게 보내버린 시간이 정말로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대며 지내느니 여행이라도 제대로 갔다면, 뭔가 공부라도 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는 정말 근면하고 알차게 살아갈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인생은 항상 예정대로 흐르지 않고, 정신을 차려보면 엉뚱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패기 넘치는 전역 다짐과는 다르게, 정신을 차려보니 인생이 또다시 낯선 곳에 있었다. 그나마 예전에도 이런 종류의 슬럼프를 경험했기에 다소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작은 위안일까. 잘 안 풀리는 일들의 연속. 지금 돌아보는 2016년의 봄과 여름은 쉴 새 없이 힘든 기억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다. 그 가시밭길을 걷는 내내 휴식을 원했다. 고난의 시간 끝에 방학이 왔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과는 다르게, 휴식의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았다.

 지난 두 달 간 작은 방에서, 요양의 시간들을 보냈다. 첫 아르바이트 월급으로는 컴퓨터를 구입했다. 중학생 시절때부터 온전한 내 컴퓨터를 갖는 것을 원했는데, 스물 다섯이 되어서야 그것이 이뤄졌다. 하고 싶었던 게임들을 원없이 했다. 10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아르바이트에서도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학교에서 하는 아르바이트였기때문에, 저번 겨울보다는 일거리가 정말 적었다. 일터의 사람들을 만나는 그 자체에 만족하고, 계속 자리를 가지면서 부족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대체했다.  퇴근하고는 되도록 맛있는것을 하나씩 먹고,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며 즐겼다. 잠이 필요한 날은 충분히 잤다. 인생의 마지막 방학인것처럼, 나는 최대한 휴식했다. 그리고 예전과는 다르게, 휴식의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았다. 지금의 정적인 이 시간이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죄책감은 갖지 않기로 했다.

브로콜리 너마저 - 유자차


바닥에 남은 차가운 껍질에 뜨거운 눈물을 부어
그만큼 달콤하지는 않지만 울지 않을 수 있어
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제는 지친 마음을 쉬어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설탕에 켜켜이 묻어
언젠가 문득 너무 힘들 때면 꺼내어 볼 수 있게
그때는 좋았었잖아, 지금은 뭐가 또 달라졌지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휴식기를 발전이 없는 정체된 시간으로 치부하던 생각은 거의 사라졌다. 끄떡없이 일정히 돌아가는 기계도 휴식이 필요한 법이다. 사람은 오죽할까? 몇 년을 살고 끝낼 삶도 아니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 역시 없다. 그저 즐겁게,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의 시간은 벼랑 끝에 몰아세워진 자신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 생존의 시간이다. 다른 걸 할 수 있었지만 그저 흘려보내버린 시간이 아니라, 그렇게 쉬어야지만 내일의 나로 나아갈 수 있는 필수적인 시간이다.  침대 위 아침의 빈둥거리는 20분, 점심 한 시간을 쪼개서 만들어내는 티 타임, 퇴근 이후의 휴식 시간, 그런 것들이 중요한 법이다. 방학은 2주 정도 남았다. 개강을 하면 또 다시 열심히 달려야 하기에, 남은 방학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후회없는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이 유자차를 온전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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