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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ug 28. 2016

그렇게 다시 축구팬이 되었다.

생애 첫 직관은 나를 다시 축구로 밀어넣었다.

 인사이동철.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다. 모두가 바쁜 이 시기에, 새 팀장님과 나 사이에는 출근 인사와 퇴근 인사를 하는 정도의 작은 접점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새 팀장님이 좋은 분이다, 인간적인 분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알 길이 없었던 나는, 그런가보다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야근을 하게 된 어느 날, 저녁식사를 배달시켜놓고 직원들 모두 회의 테이블에 앉았다. 처음으로 새 팀장님과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지나가는 말로 새 팀장님께서 축구를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나도 축구를 꽤 좋아했었기 때문에 축구 이야기를 살짝 꺼냈다. 그 이후로 10분 정도는 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됬다. 팀장님의 축구 이야기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K리그를 좋아하고, 그중에도 FC 서울의 팬이다, 한창때는 제주도를 빼고는 서울 경기는 다 따라다녔다, 요새도 가끔 가족들과 함께 축구장에 가는 편이다, 나는 그 이야기에 내가 좋아하는 팀을 이야기하고,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팀장님께서는 축구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너무나 기쁘고, 언제 한번 다 같이 뭉쳐야겠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여기서 다 같이라는건 인사이동때 팀장님의 원래 부서에서 같이 온 직원분을 말하는 것이었다.


 두 분이 유독 친해보이는 이유가 같은 부서 출신이어서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둘은 축구 친구였던 것이다. 이따금 팀장님께서 스트레스를 받으실 때, 그 직원분에게 커피 한잔 하고 오자고 말씀하시곤 했다. 팀장님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자리였으리라. 그런데 야근하며 축구이야기를 했던 그 다음날, 꼭 점심은 혼자 드시던 팀장님께서 나와 그 직원분에게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 전날의 그 언제 한번 뭉치자가 바로 다음날이 되었다. 회동은 학교 근처 국수집에서 이뤄졌다.


 비빔국수에 김치전이 놓인 테이블 앞에서 두 분은 쉴새없이 축구 이야기를 하셨다. 두 분은 똑같은 FC 서울의 팬이었다. 요새 리그가 어떻니, 컵 대회는 어떻니 하는 이야기로 대화는 계속되었다. 물론 이야기 시작 전에 팀장님께서 나를 소개해주는 시간도 있었다. 이 친구도 축구를 좋아한다더라, 프리미어리그 뉴캐슬이라는 팀을 좋아하는데 그 팀이 강등이 되었다더라,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시던 팀장님은 다음 주 수요일에 중국 프로팀과의 컵 대회가 있다면서, 모처럼 직관을 가는게 어떻냐고 직원분에게 제안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다음 주 수요일에 약속이 없냐고 물으셨다. 약속이 없었고, 사실 있었더라도 몹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바로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생애 첫 직관은 무척이나 뜬금없이 성사되었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간간히 FC 서울에 대해 알아보고, 최소한 베스트 일레븐 정도는 줄줄 꿸 수 있게 되고, 경기를 간다는 사실이 약간 기억에 희미해졌을때 쯤 일주일이 지났고, 마침내 직관 날이 되었다. 퇴근 시간이 5분정도 지났을 때, 늦은 회의를 끝마치신 팀장님이 달려오셨다. 팀장님의 아들도 회사로 찾아왔다. 열 세살짜리 남자아이. 앞 유리의 오른쪽 귀퉁이에 약간 금이 간 팀장님의 SUV에 올라타, 팀장님이 사주신 김밥을 먹으며, 상암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듣는 소리로는 K리그는 인기가 없어서 관중석이 텅텅 빈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응원 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경기장 앞은 붐볐다. 경기장 밖으로 울려퍼지는 중계를 들어보니 킥 오프 직전임을 알 수 있었다. 바쁘게 표를 끊고 관중석에 앉았다. 생전 처음 보는 그라운드는 나름 골수 축구팬인 나를 벅차게 했다. 생각보다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가까웠다. 꽤 높은 자리에 앉았는데도 그랬다. 마치 축구 게임에서 보던 그 시점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사실 FC 서울의 경기력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상대인 중국 프로팀 산둥 루넝의 간판 스트라이커 그라치아노 펠레, 그리고 전 뉴캐슬 유나이티드 스트라이커였던 파피스 시세를 보는 것을 더 기대하고 하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를 자주 보기 때문에, 저번 시즌까지 사우스햄튼에서 활약했던 그라치아노 펠레는 당연히 기대가 되는 부분이었고, 처참한 경기력때문에 최근에는 챙겨보지 않았지만 8년이나 팬이었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셔츠를 입은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보니 펠레는 선발 출장을 했다. 시세는 2군에 있다는 모양이었다. 서울의 스쿼드에도 꽤 익숙한 선수들이 많았다. K리그 팬이 아니어도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전설의 용병 스트라이커 데얀, 아스날을 이후로 커리어가 수직하락한 박주영, 국가대표 센터백이었던 곽태휘, 그리고 며칠간 조사하면서 알아본 선수들 몇몇으로 스쿼드는 채워져 있었다.


 경기 예상이라는것은 할 수가 없었다. 양 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팀의 스트라이커는 빅 리거 출신이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무승부 정도 할 것 같다, 팀장님이 서울 팬이기 때문에 서울이 좋은 분위기를 가져가면 아무래도 좋겠다, 정도의 생각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 내용은 완벽한 서울의 페이스였다. 초반부터 멋진 패스웍으로 기회를 가져갔고, 골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박주영 앞에 기막힌 패스가 갔다. 그 이후 서울의 골 폭격이 이어졌다. 멋진 패스와 수비 역시 더해졌다. 그 경기력은 열광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서울의 팬인것처럼, 찬스가 오면 의자에서 일어서고, 아깝게 빗나가면 머리를 감싸쥐었고, 상대팀의 무리한 반칙에는 항의를 하고, 골이 들어가면 일어나서 방방 뛰었다. 티비에서 봤던 관중들의 약간은 과장된듯한 모습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멋진 경기를 보는 축구 팬이라면 정말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완벽한 FC 서울의 서포터가 되어 있었다. 마치 예전에 좋아하던 팀이 승리한 날이면 한껏 들뜬 마음으로 편히 잠을 이뤘던 그때처럼, FC 서울의 승리는 나를 너무나 기분좋게 했다. 대교 위의 빠르게 지나쳐가는 가로등 불빛, 앞 유리의 오른쪽 귀퉁이가 금이 간 약간은 어수선한 팀장님의 SUV, 축구 경기장의 잔디 냄새가 너무 좋아서 경기장에 바짝 붙어 앉았다는 팀장님의 이야기까지, 모든 것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다음 경기를 기다린다. 리그 1위인 전북과의 대결. 기다릴 경기가, 기대할 수 있는 경기가 생겼기에, 삶의 소소한 낙이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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